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최근 청와대로 찾아온 국민회의 소속 중진의원 2명으로부터 권노갑(權魯甲)전의원을 풀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목소리가 잠겼다.
김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청와대 모비서관은 12일밤 권전의원이 입원중인 강북삼성병원으로 찾아가 “몸조리를 잘하라”며 위로했다. 권전의원은 “김대통령께서 국정을 운영하시는데 걸림돌이 돼서야 되겠느냐, 나는 괜찮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그러나 20일 결혼하는 권전의원의 외동딸(28세)이 울음을 터뜨렸다. 13일 아침 권전의원이 주거제한으로 외동딸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김대통령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동교동계의 맏형이자 김대통령의 분신으로 불렸던 권전의원과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집사’로 알려진 홍인길(洪仁吉)전의원 등 한보사건 관련 정치인들을 특사대상에서 제외한데 대한 정치권의 분석이 구구하다.
홍전의원에게도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지난해 옥중에서 누나를 여읜데 이어 11일에는 친형의 상을 당했다.
두사람을 사면에서 제외한 것은 국민여론을 감안한 때문이다. 즉 한보사건 관련 정치인들을 사면하면 권전의원을 봐주기위한‘끼워넣기’특사라는 비난여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계개편 움직임 등 현재의 정치권 기상과 관련이 있다는 정치적인 시각도 있다. 야권의 한 중진의원은 “한보사건은 미제(未濟)사건”이라고 말했다. 언제고 다시 정치권을 요동치게 할 수 있는 불씨를 안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상당수 정치인에게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권전의원을 사면하는 것은 불씨를 땅에 묻는 셈이 된다고 그는 해석했다. 그는 “사정당국이 80여명의 정치인 명단이 담긴 ‘한보리스트’를 확보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고 덧붙였다.
당장 경제청문회를 의식한 때문인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경제청문회가 실시되면 한보사건이 재론될 것이고 그럴 경우 권전의원을 포함한 한보사건 관련 정치인들이 줄줄이 청문회 증인으로 서게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는 얘기다. 주변인사들은 광복절 특사에 기대를 걸고 있다.
〈임채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