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상면/한일어업협상의 해법

  • 입력 1998년 3월 23일 21시 00분


지난 1월24일 32년간이나 지속돼온 한일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함으로써 우리를 의아하게 했던 일본이 두달만에 태도를 바꾸어 협상을 재개하자고 제안해왔다. 오부치(小淵)일본 외상은 “수산업체와 정치권의 반대에 부닥쳐 협정파기가 불가피했었다”며 공식 사과했다고 한다.

협정파기 당시 우리가 일본에 대해 실망했던 것은 2년간이나 협상에 협상을 거듭해 거의 성사단계에 이르렀던 새로운 어업협정을 사소한 국내 사정을 들어 뒤엎어버린 무성의한 태도 때문이었다. 새 정부 출범에다 IMF환란(換亂)을 당하여 매우 어려운 지경에 처한 우리를 한번 흔들어보겠다는 것인가하고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 日 정치논리 개입말아야

그러나 일본정부가 이번에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해 반성을 표시하며 선린우호의 마음으로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자고 제안한 것은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사실 한일어업협상이야말로 한일 과거사와 관계 없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양국사이에 있는 바다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 것인가하는 문제일 뿐이다. 지난 2년 동안 양국 대표들은 10여차례의 협상을 통해 그런대로 지혜를 모았으므로 이미 합의해 놓은 것을 기초로 하여 협상을 재개한다면 의외로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연말 양국이 의견 접근을 본 것들은 실현가능성이 높은 것들이었다. 독도문제 때문에 해양 경계 획정이 불가능한 현실을 감안해 32년간 양국간에 존속한 어업질서를 새로 등장한 2백마일 배타적 경제수역 제도와 적절히 조화시키자는 것이었다. 즉 12마일 영해와 일치하는 어업전관수역을 34∼35마일로 늘림으로써 늘어난 전관수역내에서 연안국이 어업자원을 보호케하고 전관수역 밖의 어업자원 보존수역에서는 종래 관행에 따른 어업질서를 유지하자는 것이 그 골격이었다. 그리고 어업자원 보존수역을 동경1백35∼1백37도 서쪽지역으로 하여 일본 쪽의 일정해역을 제외하는 문제도 웬만큼 합의가 이루어졌었다.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는 독도주변수역의 처리문제였다. 이 문제 역시 독도를 현재 우리가 영유하고 있다는 현실을 일본이 부인하지 않으므로 현상유지를 기초로 하여 우리의 독도 영유권 행사에 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합의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현재 독도에는 우리의 영해와 접속수역이 확보돼 있다. 다만 독도의 영해 밖의 주변 수역에 관해서 우리나라의 여타 해안과 마찬가지로 34∼35마일의 어업전관수역을 갖게 할 것인가 여부는 양국연안에 산재하는 많은 도서들의 지위문제와 맞물려있어 쉽사리 합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양국은 이미 양국 해안에서 34∼35마일밖에 거대한 어업자원보존수역을 설치하자는데 의견 접근을 본 바 있으므로 도서의 지위 문제를 유보하고 합의가 가능한 수역에 대해서 어업자원의 보존과 이용을 협의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 해양법 협약에서도 해양경계선 획정이 어려운 경우에 당사국들은 잠정적 조치를 강구할 수 있도록 돼있고 이런 잠정 조치는 차후 해양경계획정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고 있으므로 어업자원의 보존과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어업협정의 체결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 효율적 자원이용에 초점을

어업협정의 체결을 위한 협상의 목적은 마치 커다란 호수와 같은 반폐쇄해(半閉鎖海)인 동해에서 국경을 모르는 어업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보존, 이용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두어야 할 것이다. 어업협정이란 나중에 개정할 수도 있으므로 영토문제와 관련이 없는 한 구태여 잠정적 조치니 뭐니하는 말도 필요가 없다. 협상이 어려울 때에는 어려운 문제는 뒤로 미루고 가능한 것을 먼저 합의하는 것이다. 양국 대표들이 앞에 놓인 바다를 보고 나란히 앉아 전향적으로 문제를 풀어주기 바란다.

이상면(서울대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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