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 나오는 성전(聖戰)이 북풍유도 작전의 암호명이었다. 기독교 장로인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은 스스로 이 특급비밀작전의 이름을 짓고 지휘봉을 잡았다고 털어놓았다.
아말렉족은 사막지역에서 거주하던 고대유목민족. 이집트를 탈출하는 히브리족을 공격했다가 모세가 훗날 후계자로 지명할 정도로 총애했던 여호수아에게 크게 패했다. 무찔러야 할 적(敵)의 상징이 바로 아말렉족이 되고 말았다.
권전부장이 서울지검 11층 특별조사실에 머무른 시간은 20일 오후 3시45분부터 약 13시간. 그는 이 중 저녁식사 시간과 몇 번의 휴식시간을 뺀 약 8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신상규(申相圭)부장검사 등 검사 3명이 번갈아가며 작성한 조서가 무려 A4용지 30장에 달했다. 조사의 초반부. 권전부장은 자신이 윤홍준(尹泓俊)씨 기자회견을 지시했고 안기부 해외공작 자금 중 25만달러를 윤씨에게 지불했다고 순순히 털어놨다.
그러나 순조로운 것은 거기까지였다.
“윤씨 기자회견을 ‘아말렉작전’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뭡니까.”(신부장검사)
“윤씨 기자회견은 각 당의 지나친 대북연계활동에 대한 경종이자 좌익세력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구약성서에 모세가 여호수아를 내세워 아말렉족을 물리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모세)가 부하들(여호수아)을 시켜 좌익세력(아말렉족)을 물리치려 한 상황과 유사하지 않습니까.”(권전부장)
“대통령 선거전 와중에 특정후보(당시 김대중후보·DJ)를 비방하는 허위 기자회견이 좌익세력과의 전쟁입니까. 당신은 결국 구여권을 여호수아로 내세워 DJ를 아말렉으로 삼고 싸운 거 아닙니까.”(신부장검사)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권전부장)
신부장검사와 권전부장은 몇시간 동안 ‘아말렉논쟁’을 거듭했다.
아말렉논쟁은 윤씨 기자회견 등 일련의 북풍조작사건의 궁극적 뿌리를 규정하는 성격이어서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신부장검사가 “권전부장의 주장대로 여야가 북에 접근하는 문제를 파악했다면 일찌감치 문제를 삼거나 해야지 뒤늦게 대선 막판이 되자 한쪽만 문제삼은 것은 무슨 이유냐”고 되물었다. 신부장검사가 특정후보에 대한 일종의 낙선운동이었다는 논리로 그동안 조사한 정황과 증거를 제시하자 권전부장은 말문을 닫았다.
밤샘 조사는 오전 4시에 일단 끝났다. 조서에 대한 확인과 몇군데의 수정작업이 뒤따랐다.
이어 오전 4시40분. 조사실에 수사관 1명만 남은 것을 확인한 권전부장이 화장실로 들어갔고 5분 뒤 요란한 파괴음과 함께 비릿한 피냄새가 문 밖으로 퍼져 나왔다.
〈부형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