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의 어법은 언제나 도입부분이 길고 맨 나중에 가서야 자신의 의중을 밝히는 식인데 최근 들어 확실히 달라졌다. 예전에 비해 훨씬 강하고 분명한 내용을 담고 있는 김대통령의 요즘 발언은 그가 정국수습을 위한 모색을 이미 마쳤음을 의미한다.
청와대 보좌진의 발언에서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정국돌파를 위한 전의(戰意)가 느껴진다. 택일만 남겨놓은 듯한 분위기다.
김대통령이 4일 미국 월 스트리트 저널지와의 회견에서 “지방선거가 끝나면 경제청문회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은 지방선거 직후 대야관계에 있어 정면대응을 예고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환란(換亂)의 원인과 책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경제청문회를 통해 국민은 도대체 현재의 국난을 초래한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야당은 국난의 시기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당시 실질적으로 경제정책을 총지휘한 것은 경제부총리와 청와대경제수석이었다”고 강조, 김전대통령에 대한 책임추궁은 우회하려 했다. 이는 결국 김전대통령을 청문회 증언대에 세우지 않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김전대통령 비켜가기’에는 김대통령의 고뇌와 복안이 함께 담겨 있다. 김대통령은 김전대통령을 증언대에 세울 경우 정치보복으로 비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
김대통령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김전대통령과의 관계를 고려했을 가능성도 있다. 정치권 주변에서 두 사람의 재결합설이 끊임없이 나도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김대통령은 김전대통령과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의 사회활동에 대해서는 “사생활의 자유는 갖겠지만”이라고 전제, 명백하게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전비(前非)를 안고 있는 이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구여권의 재결집 움직임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과격학생들과 친북학생들이 시위에 가세해 사회를 불안케 한다”며 한총련을 강도높게 비난하면서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는 온건론자가 더 많다”며 유화적인 발언을 한 것도 주목된다.
이는 노학(勞學)분리대응 방침을 명확히 한 것으로 가능한 한 노동계를 껴안아 경제난 극복을 위한 동반자로 삼으려는 의지와 희망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여권 관계자들은 경제청문회 개최가 김대통령의 정국운영방식이 변화하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 때를 계기로 김대통령이 이전과는 다른 면모를 보일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보다 강하게’가 이들의 결론이다.
〈임채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