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김전대통령이 국민회의 경기지사후보로 내세운 임창열(林昌烈)전부총리를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주범’으로 몰아세우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나 여권은 IMF위기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점증하는 상황에서도 김전대통령에게까지 화가 미쳐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정치보복이 사라져야 한다는 김대통령의 확신에서였다. 정권의 지역적 기반이 완벽하지 않은 여권으로서는 김전대통령에 대한 섣부른 조치가 예측불허의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판단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이 입장을 선회한 것은 더 이상 밀릴 경우 경제위기의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는 위기감과 김전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우선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불쑥 튀어나온 김전대통령의 검찰답변서가 기정사실화될 경우 여권, 특히 임전부총리를 강력히 추천한 김대통령이 궁지에 처할 것이라는 점을 걱정한 것 같다.
특히 최근들어 대량실업사태 등으로 경제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설픈 대응은 자칫 정권의 지지도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환란의 근본적인 책임이 전정권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하기 위해 김전대통령의 청문회출석을 추진키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전대통령의 답변서가 공개되자 여권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분위기였다. 국민회의나 청와대 모두 “경제파탄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김전대통령이 아직도 회개하지 않고 있다”는 성토일색이었다. 김대통령도 김전대통령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은 특히 김전대통령의 답변서가 외부로 흘러나온 경위와 배경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여권은 강경식(姜慶植)전부총리와 김인호(金仁浩)전청와대경제수석 등의 사법처리가 임박하자 김전대통령측이 이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지른 일로 확신하고 있다.
이같은 기류를 볼 때 김전대통령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김대통령의 시각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이는 두 사람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신정권 대 구정권, 여권과 한나라당간의 관계가 극한대립으로 치달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김대통령으로서도 장기적인 정국운영을 염두에 둘 때 김전대통령과의 적대관계형성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김대통령이 상정하고 있는 이른바 ‘신민주대연합’도 물건너가 버린다.
따라서 여권이 김전대통령의 청문회출석을 추진하는 것은 김전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경고메시지의 성격도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김전대통령의 향후태도가 청문회출석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영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