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의 안기부 방문은 93년 3월 당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방문 이후 5년여만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오전11시 안기부 청사에 도착, 이종찬 안기부장과 나종일(羅鍾一)1차장, 신건(辛建)2차장, 이강래(李康來)기조실장 등의 영접을 받고 곧바로 비공개로 업무보고를 청취.
김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은 뒤 “안기부가 ‘국가정보원’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스스로 개혁을 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을 보고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뒤 안기부 실무간부들에게 궁금한 사항을 질문.
안기부 수사과정에서의 인권보장에 대한 첫 질문을 받은 신차장은 “과거 안기부가 용공조작 등 불법적인 인권침해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은데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대공수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대답.
김대통령은 이어 “과거 안기부는 대북정보가 아닌 국내정치정보 수집이 본연의 업무인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국정에 개입한 사례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세계적으로 정보수집 경쟁이 치열하고 그에 따라 국운이 좌우되는데 시도지부나 시군조정관이 과연 필요한 것이냐”고 추궁.
김대통령은 또 북한의 도발가능성과 남북협상 재개가능성 및 마약조직범죄 대책 등을 묻고 안기부 간부들에게 “건의할 것이 있으면 하라”고 주문.
이에 안기부 간부들은 “대공상 필요한 곳에 제한적으로 시군출장소를 두고 있으나 지금은 일절 국정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보고.
○…김대통령은 보고와 건의를 들은 뒤 “안기부의 과거 불행한 역사의 표본이 바로 대통령인 나다.나 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감회가 클 것”이라며 몇가지 사항을 주문.
김대통령은 “안기부는 국가위기요인을 철저히 관리,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기여해야 한다”면서 “안기부는 김대중정권을 위해서 또는 국민회의나 자민련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강조.
○…김대통령은 업무보고 후 안기부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곰탕으로 점심을 같이하면서 “바른 정치를 위해 여러분의 협력이 필요하다. 6·25이후 최대 위기를 맞아 모두 힘을 합쳐 재도약, 태평양의 기적을 이루자”고 당부.
김대통령은 이어 기념식수를 하고 ‘정보는 국력이다’라고 쓰여진 원훈석(院訓石) 제막식에 참석.
김대통령은 원훈석을 둘러보다 뒷면에 ‘대통령 김대중’이라고 쓰여진 것을 보고 이부장에게 삭제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래야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정보원은 영원할 수 있고 이 원훈석도 남게 된다”고 설명.
〈임채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