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번 선거에 대한 총평은 정치권이 아직도 영남 호남 충청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할거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데로 귀착한다. 특히 광역단체장선거는 ‘동서분할’이 여전함을 입증했다.
그러나 저변의 민심을 감지할 수 있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텃밭의 응집력이 예전같지 않음을 확인시켰다. 우리 정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이다.
먼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국민회의의 철옹성으로 인식돼왔던 호남의 경우 36개 기초단체중 3분의 1인 12개 지역에서 국민회의가 패배했다. 김대통령이 평민당을 창당, 본격 정치활동을 재개했던 13대 이후 모든 선거에서 90%이상의 점유율을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런 결과는 가히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서리의 지지기반인 충청권도 전체 31개 지역에서 10개를 무소속이나 다른 정당에 빼앗겼다.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아성, 부산 경남 울산도 41개 지역중 13개를 무소속이 차지했다.
이에 대해 각 정당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공천후유증이 빚어낸 부산물이라는 것. 경선 탈락인사들이 무소속으로 대거 출마, 표가 분산됐다는 얘기다.
또 현역 기초단체장을 무리하게 교체해 강한 반발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한다. 95년에 당선한 현역단체장들로부터 만족할 만한 ‘충성’을 받지 못했다고 판단한 여야 지구당위원장들이 공천과정에서 단체장을 대거 물갈이한 것이 이번 선거의 또 다른 특징이었다. 충분한 사전준비없이 이뤄진 물갈이로 지명도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현역단체장들의 높은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들은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다.
하지만 단순한 ‘무소속약진’으로는 선거결과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이번 선거가 사실상 ‘3김 부재’속에서 치러졌고 3김의 영향력도 저하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치권안팎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투표율의 급격한 하락도 3김이 선거운동에 직접 간여하지 않은 데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해석도 설득력이 있다.
국민회의의 한 호남출신의원은 “호남의 분위기는‘선생님을 대통령에 당선시켰으니 할 일은 다했다. 이제 국회의원이나 시장 군수가 될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아서 하라’는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3김 이후’의 정치구도를 새롭게 짤 16대총선의 선행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6대총선까지는 정계개편이나 내각제개헌추진 등 굵직한 변수들이 즐비하게 남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번 기초단체장선거결과는 16대총선에서 대격변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지역분할 양상의 완화는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30년 넘게 한국정치사를 주도해온 ‘3김시대’의 종막을 예고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최영묵기자〉m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