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국회의원선거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수도권 기초단체장선거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바로 지방선거이후로 거취표명을 유보해온 수도권 의원들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미이후 본격화할 여권의 정계개편공세에 사실상 무방비상태에 놓이게 됐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특히 여권이 1단계 개별의원 영입, 2단계 대구 경북(TK)지역과 지역연합이라는 구체적 밑그림까지 준비하고 있는 데 반해 ‘외풍(外風)’에 대항할 뾰족한 대응방안이 없다는 데 한나라당의 더 큰 고민이 있다.
5일 열린 한나라당 총재단 및 선거대책위원 연석회의에서는 이번 선거결과를 ‘선전(善戰)’이라고 자평했으나 속으로는 무력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나라당이 더욱 불안해 하는 대목은 여권이 갖고 있는 ‘사정(司正)의 칼’이다.
지방선거전부터 여권에서 한나라당 핵심지도부의 사법처리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 잇따르자 한나라당내에서는 “정치권사정을 정계개편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며 잔뜩 긴장,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한나라호가 격랑에 흔들릴 것이라는 또 다른 지표는 조기전당대회 소집을 둘러싸고 벌어질 내홍(內訌)이다.
이회창(李會昌)명예총재와 김윤환(金潤煥)부총재 중심의 비당권파측은 내주초부터 ‘7·21’재보궐선거에 앞서 전당대회를 소집, 당체제를 전면정비하자고 요구할 움직임이다.
한나라당이 영남지역을 석권함으로써 정계개편의 연결고리로 지목돼온 김부총재진영이 ‘영남당(黨)’으로서의 독자적 존립가능성에 자신감을 갖게 된 점도 내홍이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 실제로 김부총재 진영은 “이번에야 말로 분당 불사의 각오로 당체제 정비를 요구할 것”이라며 한판 겨룰 수밖에 없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조순(趙淳)총재 등 당권파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특히 강원지사선거 승리로 지역기반을 마련한 조총재측은 재보선에 앞서 전당대회를 여는 것은 ‘적전분열(敵前分裂)’을 하자는 것이라고 응수하고 있다.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이런 대립은 바로 여권이 겨냥하고 있는 틈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여권이 추진하려는 TK와의 지역연합구상 밑바탕에 한나라당이 분열할 경우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분할관리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한나라당이 분열할 경우 주변부는 여권에 흡수될 수밖에 없다”며 “과반수가 확보되지 않더라도 4당체제로 충분히 안정적 정국운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물론 이번 선거에서 다시 확인된 영남지역의 ‘반(反)DJ정서’를 감안해볼 때 가까운 시일내에 지역연합구도가 실현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희박한 게 사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분열 움직임과 맞물릴 경우에는 여권이 그리는 ‘큰 틀’의 정계개편이 가속화할 가능성도 섣불리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튼 한나라당은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기에 접어들게 됐다.
〈이동관기자〉dk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