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을 벗긴다 ⑤/각계 「민영화」시각]

  • 입력 1998년 6월 22일 19시 48분


공기업을 산하에 두고 있는 정부부처들과 공기업 자체의 임직원들도 현재의 공기업을 어떤 식으로든 개혁해야 한다는데 원론적으로는 동의한다. 하지만 방법론에 들어가서는 민영화 해외매각 등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가급적이면 현행 공기업형태를 유지하면서 경영을 혁신해나가야 한다는 얘기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학계 연구소 민간기업 관계자들은 “경영혁신을 강조하지만 현체제를 그대로 두는 한 비효율성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밥그릇 챙기기’식 발상에 불과하다는 혹평까지 따른다.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공기업 민영화는 절체절명의 과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저항을 제거하고 최대한 빨리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상업성이 있는 공기업을 매각해야 한다.”(남일총·南逸聰 한국개발연구원 법경제실장)

80년대초 영국의 마거릿 대처총리는 “일이 잘못될 경우 내가 다 책임지겠다”며 공기업 민영화에 임했다. 석탄사업을 민영화하면서 정부지원을 끊자 노조가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때 대처는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중소기업 직원들은 대량 실직에 직면해 있다. 일자리를 유지하더라도 월급이 반으로 줄었다. 대기업 가운데도 과장급 월급을 1백만원으로 깎은 곳이 수두룩하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공기업노조는 이같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남실장)

“공기업 민영화는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작년까지는 세수가 확보됐고 외자유치도 덜 절실했기 때문에 대충 버텨낼 수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국가위기 상태에서는 공기업을 팔아야 한다. 얼마만큼을 어떻게 매각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류상영·柳相榮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류연구원은 이렇게 덧붙인다. “예전처럼 정부보유 지분을 조금 매각하는 식은 안된다. 재벌그룹이 공기업 지분의 일부를 사들일 수는 있겠지만 거대 공기업을 통째로 사들일 정도의 여유는 없다. 정부는 민영화 대상 공기업을 발표한 뒤에 회계법인 컨설팅사 공기업노사 등으로 민영화위원회를 구성해 실무작업을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재홍(金在弘)한동대교수는 “영국의 발전부문은 원자력과 송전을 제외하고는 완전경쟁에 가깝게 탈바꿈했다”며 “영국정부는 기존 발전소를 매각하면서 진입을 자유화했고 이에 따라 요금도 엄청나게 싸졌다”고 말했다.

채수찬(蔡秀燦)미국 라이스대교수는 “공기업 민영화의 첫번째 목표는 효율성 확보에 있다”고 강조했다. 즉 민영화는 국내의 독과점 공공부문을 개혁하는 차원에서 추진해 민영화할 사업부문에서 경쟁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 독점기업으로 민영화할 경우 폐해가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경고다.

채교수는 민영화의 두번째 목표는 재정자금 조달이라고 강조했다. 현상황에서의 민영화는 구조조정에 필요한 ‘목돈’을 마련한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얘기.

하지만 민영화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관료집단인 만큼 민영화 추진업무를 민간에 위임해야 한다는 게 채교수의 주문이다.

▼만만찮은 민영화 반대론〓“포항제철을 매각하는 것은 사실상 힘든 일이다. 예를 들어 광양공장을 떼어내 팔 수 있다고 하지만 포항과 광양공장은 생산 프로세스가 서로 연계돼 있어 안된다. 포철의 해외매각엔 신중해야 한다.”(임내규·林來圭 산업자원부 자본재산업국장)

산자부는 19일 “한국전력의 화력발전소 매각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틀 안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안은 올 연말에 확정되므로 이달중 발표되는 공기업 경영혁신안에선 한전을 제외해야 한다는 게 산자부의 논리.

관료들은 ‘재임중에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퇴임후에는 한 자리를 제공하는’ 산하기관을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002년까지 1단계 전국 배관망 건설이 마무리되는데 1단계 이전에 민간주주가 경영을 지배하면 경제성이 낮은 지역의 배관망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박만우·朴萬宇 한국가스공사 기획조정실장)

전국 공급망 건설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전국민이 고르게 천연가스의 혜택을 받게 하기 위해서는 배관망 건설이 마무리되는 2002년까지는 현체제의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세계적 추세에 따라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는데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포철은 지분의 상당부분이 상장돼 있고 기관투자가에게 고르게 분산돼 있다. 정부지분을 매각할 때도 불특정 다수나 기관투자가에게 고르게 매각돼야 한다. 지분매각이 경제력 집중을 불러와서는 안된다.”(박종일·朴鍾一 포철 전무이사)

우리나라는 자본구조가 취약해 특정 소수인이 포철을 소유하게 되면 국가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크다는 주장이다. 국민기업으로 남고 싶다는 얘기다.

박방주한국중공업노조 기획실장은 “작년에 국회에서 통과된 공기업의 구조조정과 민영화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민영화방안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경영혁신 스케줄대로 가자는 주장이다.

“현정부의 공기업 민영화방안은 매각을 통한 재원조달이라는 단기정책목표를 위한 임시처방이라는데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공기업 민영화는 국가산업정책이라는 장기정책목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권순정·權純正 정부투자기관노조연맹 부위원장)

권부위원장은 “해외매각의 경우 중요산업은 국가주권적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며 “일단 소유권과 경영권이 다국적 거대독점자본에 넘어가면 그후로는 지속적으로 국부가 해외로 유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공기업 민영화를 총괄하는 기획예산위원회는 금명간 민영화대상 공기업을 발표할 예정이다. 또 7월초엔 퇴출대상 공기업을 발표하고 나머지 공기업에 대해 강력한 구조조정안을 제시할 방침이다.

진념(陳稔)기획예산위원장은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공기업 민영화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우리경제는 살아날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기업의 비효율성은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검증돼온 사항”이라며 “남은 과제는 실천”이라고 말했다.

김태동(金泰東)청와대정책기획수석도 “세계경제는 다국적기업이 좌우하고 있다”며 “외국인의 국내기업 인수를 두려워하는 것은 편협하고 낡은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공기업 민영화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박종구(朴鍾九)기획예산위 공공관리단장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공기업의 경영체제와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만 공공부문의 진정한 혁신이 달성된다. 민영화의 물길을 되돌리기엔 우리의 상황이 너무 절박하며 이번이 아니면 공기업개혁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끝―

〈임규진·이 진·백우진기자〉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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