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헌진/『고향방문 정녕 꿈인가요?』

  • 입력 1998년 7월 15일 19시 45분


“분노와 안타까움에 발이라도 동동 구르고 싶은 심정입니다.”

연이은 북한 무장간첩 침투사건으로 모처럼 조성된 남북 교류 무드에 금이 가자 부풀었던 이산가족의 꿈도 무너지고 있다.

실향민들의 마을인 강원 속초시 청호동 속칭 아바이마을의 노인회관. 15일 북의 고향을 등진 지 50년이 지난 노인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이러다가 정말 못가는거 아닌가. 꼭 죽기전에 가야하는데 말이야.”

이들은 4일 무장간첩 침투사건이 발생하기 전만 해도 곧 고향땅을 밟을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벅찼다.

51년 지금은 북한땅인 강원 통천에서 38선을 넘어온 이상식씨(81)는 “지난달 북한 잠수정사건 때도 고향방문이 무산될 지 몰라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다행히 우리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 불변방침으로 안심했는데 이번에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토해냈다.

45년 분단 이후 남북관계는 수시로 돌출변수가 발생해 화해분위기가 순식간에 깨지곤 해 그때마다 이산가족은 ‘조마조마한’ 마음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

1천만 이산가족 재회추진위원회 조동영(趙東瀯)사무총장은 “일방적으로 우리만 북한에 베푼다고 진정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북당국이 근본적으로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될 때까지는 이산가족상봉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이상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없다. 이산가족 1세대는 대부분 70세 이상의 고령.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한 시가 아쉽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수구초심(首丘初心)으로 살아온 이들 이산가족의 한맺힌 희망에 다시 ‘짙은 먹구름’이 덮이고 있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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