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국회의장 후보인 자민련 박준규(朴浚圭)최고고문은 27일 자민련 충청권 의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93년 문민정부 출범 직후의 재산공개 당시 ‘벌집(임대주택)’ 70여채를 보유한 것으로 드러나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난데 대한 해명이었다.
그러나 이 말에 공감하는 의원들은 거의 없었다. 민망스러워 고개를 돌리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의원들이 많았다. 한 의원은 “물의를 일으켜 국회의장직에서 불명예 퇴진했으면서 아직도 반성한 흔적이 없어 오히려 내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고 전했다.
다른 의원은 “박최고고문이 문제가 된 재산을 문화재단에 기증하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그러고도 무슨 할말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또다른 의원은 “박최고고문은 이미 의장을 두차례나 했는데 또 의장을 시키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제의 벌집은 서울 석촌동 대지 2천6백34㎡, 건평 4천99평 규모의 다세대 주택. 박최고고문이 60년대 나대지 상태에서 매입해 13세이던 아들 앞으로 명의를 이전한 것.
이 때문에 “국회의장이 아들 이름으로 집없는 서민들에게 집세나 받는 부동산임대업을 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많았었다. 박최고고문측은 그러나 “재산 형성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지금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아예 내놓고 박최고고문의 도덕성에 시비를 걸었다.
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은 28일 “구악의 표본인 박고문을 국회의장으로 만드는 게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본질이냐”고 비난했다. 박고문과 같은 대구 출신의 서훈(徐勳)의원은 27일 의원총회에서 “재산 형성과정에 의혹이 있는 사람이 의장이 돼선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밖에 재산공개 당시 관련 기사를 여러장 복사해 기자들에게 배포하며 연일 박최고고문 흠집내기에 주력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여권 내부에서 의장후보를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7·21’재 보궐선거에서 몇몇 후보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공천을 강행해 패배를 자초한 만큼 지금이라도 의장 후보를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당에서 이미 박고문을 밀기로 의견을 모았다니 별수없이 따라야겠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