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박정훈/『높은 분이 또 온대…』

  • 입력 1998년 8월 7일 19시 25분


“아니 이거 도대체 일할 시간이 있어야지….”

5일 밤부터 시작된 수마(水魔)와의 전쟁으로 눈코 뜰 새 없는 파주시 수해대책본부.

6일 오후 국민회의 의원들에 대한 네번째 브리핑이 끝나자 휴가까지 반납하고 시청 대책본부로 복귀, 정신없이 피해상황을 접수하던 한 공무원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복구지원을 요청하는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높으신 분’들의 관심에 답변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복구대책 마련하랴, 상황보고하랴. 도대체 일을 제대로 하려 해도….”

이날 파주시 대책본부에서 열린 브리핑은 모두 네차례. 브리핑이 진행되는 동안 공무원들은 일손을 놓고 ‘웃분’들의 지시사항을 받아 적어야 했다.

물벼락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이 복구의 손길을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소중한 1시간이 ‘훌쩍’ 허비됐다.

김성훈(金成勳)농림부장관을 비롯, 5명의 국민회의 의원과 한나라당 이재창(李在昌)의원은 장양운(張洋雲)부시장으로부터 각각 10분씩의 보고를 받았다.

‘표밭’에서 뽑힌 임창열(林昌烈)경기지사는 수해지역이 많아 바빠서인지 부인 주혜란(朱惠蘭)씨가 현장에 위로차 왔는데 임지사를 대신해 브리핑을 받는 형국이어서 눈길을 모았다.

국민회의 김충조(金忠兆)의원 등 5명의 중앙당의원에 대한 브리핑이 끝나고 난 오후 4시경에는 브리핑 전용 상황판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다는 장부시장의 질책이 쏟아져 “이래저래 공무원만 혼쭐난다”는 푸념도 들렸다. 일부는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해 난리가 날 지경인데 웃분들의 관심이 너무 뜨거워 참 힘들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아이구 또 온대?”

7일 오전. 복구지원을 요청하는 전화벨 소리를 뚫고 공무원들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파주〓박정훈기자〉hun3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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