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안 내용도 모르고 이틀새 13건 통과

  • 입력 1998년 8월 20일 19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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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어렵게 정상화됐지만 국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상임위원회의 법안심사기능은 여전히 ‘부실(不實)’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19일 오후4시반 국회 재정경제위 회의실. 장기간의 국회공전으로 계류중이던 법안과 국회 전문위원들의 검토보고서가 상임위원 책상마다 수북이 쌓여 있는 가운데 개회가 선언됐다.

상견례와 함께 이규성(李揆成)재경부장관의 간단한 인사가 끝난 뒤 한나라당 김동욱(金東旭)재경위원장이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개정안 외국환거래법 등 13개 정부제출 법률안과 3개 동의안에 대해 일괄상정을 요청하자 잠시 소란이 발생했다.

한나라당 안상수(安商守)의원이 “제출된 법안 대부분이 오늘 처음 보는 법안들로 제목조차 생소하다. 집에 가져가서 검토할 시간 정도는 줘야 하지 않느냐”며 일괄상정에 반대했다.

여야 간사들은 이에 대해 “일정이 촉박하다. 여야 간사간에 일괄상정하기로 합의했으니 이해해달라”며 안의원을 설득, 결국 정부제출법안은 일괄상정됐다.

간사합의사항은 19일 소위원회를 구성, 20일 하루 동안 소위원회 활동을 벌인 뒤 21일 13개 법안과 3개 동의안을 일괄처리하는 ‘초고속 처리일정’이었다.

안의원의 말이 끝나자 다른 의원들이 뒤늦게 법안 내용이라도 파악하기 위해 책상 위에 쌓인 법안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일부 의원들은 “또 법안내용도 모르고 통과시켜야 할 것 같군”이라고 중얼거렸다.

재경위원들이 이처럼 법안내용에 문외한이었던 것은 그동안 장기간의 국회공전으로 대부분 이날 법안을 처음 받아보기도 했지만 재경위원 대부분이 교체됐기 때문. 인기 상임위인 재경위의 경우 연임이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도 30명의 위원 중 21명이 교체됐다.

제출법안이 많아서 전문위원들의 검토보고가 저녁시간까지 계속되자 여기저기에서 의원들이 “밥먹고 합시다”며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 간사인 박정훈(朴正勳)의원이 “시간이 급하다. 오늘 의사일정대로 정부제출 동의안 검토보고까지는 듣고 끝냅시다”며 의원들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오후7시반이 넘어서자 ‘생리적 욕구’를 참기 힘들어진 의원과 약속이 있는 의원이 슬금슬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오후8시20분경 자리를 채우고 있는 의원이 10명도 넘지 못하자 김위원장은 결국 동의안에 대한 검토보고서는 다음날 듣기로 하고 산회를 선포했다.

재경위는 20일 오전10시 전날 못했던 검토보고서를 마저 들은뒤 오후에는 제출법안에 대한 대체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의원들이 ‘더 중요한’ 업무가 많았던 탓인지 평균출석률은 내내 50%를 넘지 못했다.

발언 내용도 재경부 ‘군기잡기용’ 호통이 대부분이었으며 법안내용과 추경안에 대해 체계적인 질의준비를 해온 사람은 한나라당 김재천(金在千)의원 정도였다. 20일 오후 열린 다른 상임위도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이었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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