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부6개월 점검 좌담(上)]정치-외교-통일안보분야

  • 입력 1998년 8월 23일 19시 07분


《동아일보는 김대중(金大中)정부 출범 6개월을 맞아 그 공과(功過)를 △정치 외교 통일 안보 △경제 노동 △사회 교육 문화의 세 분야로 나눠 정밀 점검해 보는 특별 좌담을 마련했다. 23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첫번째 정치 외교 통일 안보분야 좌담회에는 고려대 최장집(崔章集·정치외교학), 연세대 함재봉(咸在鳳·정치외교학)교수가 참석했으며 인천대 김학준(金學俊)총장이 사회를 맡았다.》

▼김학준총장〓공동정권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로 많은 국민은 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식물국회’가 계속되고 총리인준에 6개월이나 걸리는 것을 보면서 너무 무기력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좋은 의미의 비판은 뒷날 약이 된다’는 믿음으로 이 정권의 6개월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지적해 주십시오.

▼최장집교수〓김대중정부는 외환위기라는 최대의 국난 속에서 출범했습니다. 당시의 위기는 과거 정부가 개혁을 제대로 못해 생긴 위기가 누적돼 표출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체제 실패’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대중정부는 개혁을 통해 글로벌 경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출발했습니다. 출발부터 ‘약한 정부’였습니다.

▼함재봉교수〓이 정부가 엄청난 제약을 안고 출발했고 지금까지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위기상황을 막는데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비전제시에 있어서는 우려할 점이 많습니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이라는 목표만으로는 국민을 끌고 가는데 한계가 있습니다.‘여소야대’라는 제약을 해결하는 방법도 과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김총장〓지난 6개월은 참으로 중요한 시기였는데 허송세월을 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입니다. 과감히 개혁할 수 있는 적기를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여소야대라는 한계도 있었지만 김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국민이 김대통령에게 기대했던 것은 무엇보다 ‘노련한 정치가’다운 리더십이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위기상황을 새로운 방법과 발상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의원빼내기와 같은 과거식 사고와 행태로 접근함으로써 국민에게 신선함과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새 정부에 확신을 주지 못해 국가 전체가 표류하는 것같은 분위기까지 형성되고 있습니다.

▼최교수〓우리 국민 사이에는 이중적인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굉장한 리더십이 출현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는 것을 기대하면서도 이 정부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인색합니다. 이는 이 정부의 주축세력이 과거 호남에 중심을 뒀던 ‘소수정부’이기 때문입니다. ‘다수’는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우호적이지도 않습니다.새정부 출범 이후 나타나는 허니문기간도 불과 몇개월만에 끝났습니다.

▼함교수〓이 정부는 출범여부가 불확실할 정도의 급박한 위기상황 속에서 출발했습니다. 그같은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실천하겠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미국도 30년대 대공황때 루스벨트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하면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런데 새 정부는 처음부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을 강하게 천명했으나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국정운영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김총장〓김종필(金鍾泌)총리 인준문제는 설령 뒷날에 불신임을 하더라도 대통령이 원했으면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야가 모두 ‘쩨쩨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당은 과거 관행을 답습하고 야당은 자꾸 집권당의 실수나 잡으려고 합니다. 원리원칙이 자꾸 타협되는 경향도 걱정스럽습니다. 경제문제를 정치논리로 풀어가려는 지난날의 폐해가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교수〓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의회와 정당으로 집약되는 대의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라는 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과거의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난다면 우려할 사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의 ‘박정희신드롬’도 30년만의 민선, 민간정부였던 김영삼(金泳三)정부가 민주주의를 통한 경제발전에 실패한데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개발독재에 대한 대응모델로 민주주의를 통해 경제를 풀어가는 모델을 발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함교수〓문제는 냉소주의가 과연 어디에서 나왔느냐입니다. 새 정부는 과거 정권처럼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난관을 돌파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실이든 아니든 정치인에 대한 사정(司正)으로 야당에 압력이 들어가고 상대당 의원 빼내오기 등의 수순을 밟는 그런 행태가 반복되면서 결국은 옛날 정권과 다를 바가 뭐냐는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산적한 경제문제를 민주주의 방식으로 풀어나가겠다는데 민주주의 방법과 절차가 뭔지 혼란스러운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노사정(勞使政)이 정리해고제를 도입하기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결정을 내렸으면 제대로 집행하는 것이 민주주의적인 절차입니다. 그러나 집행과정에서는 ‘소수도 피해를 봐서는 안된다’는 해결방식이 나타나면서 정부가 우유부단하다, 인기에 영합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 같습니다.

▼김총장〓지금 상황에 대해 많은 국민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며 돌파구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벌써 몇가지 암시되는 것으로 개헌정국이 펼쳐질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최교수〓함교수도 얘기했지만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어떤 것을 결정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명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에 다양하고 자율적인 이익집단이 분화된 상황이어서 여러 이해집단의 공통분모를 이끌어내 공동이익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정치의 과제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국민적 컨센서스를 도출해내는 것이 정부의 과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김대중정부에 답답함을 느낀다는데 동감합니다. 그러한 과제는 대통령과 행정부가 중심이 돼서 개혁의제를 제시하고 컨센서스를 조직하는 큰 흐름을 형성해내야 하고 그에 따라 정치권의 혼란이나 구태의연한 행태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개헌정국도 하나의 문제제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선공약대로 내각제개헌이 실제로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헌법이 87년 여러 세력간의 불완전한 타협의 산물이고 보면 10여년간 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드러난 점을 보완하는 문제제기가 있을 것입니다.

▼함교수〓결국 방법은 김대통령이 국민 앞에 직접 나서서 호소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여소야대를 극복하는 것도 국민이 국회에 압력을 넣어 국회가 어쩔 수 없이 따라오게 해야 합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지난 6개월동안 김대통령이 보여준 것은 미흡한 점이 있습니다. 지금 빨리 김대통령이 국민의 감동을 이끌어내 민주적으로 비상대권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위기 앞에서의 분열은 분명합니다.

▼김총장〓국내정치상황 뿐만 아니라 한반도 상황도 답답하기만 합니다. 북한측과는 공식적인 대화의 통로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김대중정부가 들어선 이후 북한에 대해 적극적인 화해정책을 추구하고 있고 이것이 민간교류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어서 기대를 걸어 볼 만합니다. 유의해야 할 것은 지난날에는 우리의 경제력이 북한의 경제력을 훨씬 앞선다고 생각해서 경제력을 매개수단으로 남북관계를 우리 주도하에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 경제도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거꾸로 북쪽에서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줄어든 것이 아닌가 해서, 다음달 초에 김정일(金正日)이 주석직에 취임하면 대남문제에 있어서 조금 다른 행보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최교수〓김대중정부의 화해와 협력을 중심으로 한 대북정책은 동북아질서나 세계질서의 탈냉전상황에도 부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남북관계는 ‘통일’이라는 수사에 얽매이지 않고 남북의 대결적관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공존과정을 성공적으로 거친 다음에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함교수〓대북정책은 기본적으로 새 정부의 방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외교는 주변 4강이 자국의 이익유지에만 급급해 환경이 매우 열악해졌지만 전반적으로 김대통령처럼 개인적으로는 좋은 위치에 있었던 대통령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 일본의 지식인 정관계인사들이 김대통령을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최근 대러시아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은 전체적인 외교전략상의 흠에서 비롯됐다기 보다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까 우리가 러시아를 과소평가,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최교수〓탈냉전의 세계경제시대에는 외교관계도 급속히 변하고 있는 만큼 한미관계를 중심축으로 하고 있는 우리 외교도 폭을 넓혀서 동북아질서라는 범주 속에서 러시아 일본 중국 등과의 관계도 발전시킬 단계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김총장〓좋든 싫든 정부가 잘해줘야만 지금의 국가적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내일에 대한 희망, 21세기에 대한 희망을 가질수 있습니다. 공동정권이 부디 애국심에 입각해서 국정운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정리〓김정훈·공종식기자〉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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