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개혁 성공하려면 ▼
정치개혁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모든 개혁의 전제로 지금의 이 썩은 정치부터 개혁해놓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개혁도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점에서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대통령의 공언대로 정치개혁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나라의 모습은 확연하게 달라질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조기탈출도, 21세기 새로운 천년의 시작도 희망 속에 기약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이 쉬워 정치개혁이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어느 정권이고 출범때마다 정치개혁을 공언하고 다짐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매번 결과는 용두사미(龍頭蛇尾)였다. 그만큼 지난(至難)한 작업이다. 이번이라고 다를 것인가. 솔직히 장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정치인치고 지금 여야 없이 ‘개혁’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퇴출대상일수록 목청은 더 크다. 그러나 자신만은 언제나 예외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저항세력의 조직적 반발에 부닥쳐 실패하고 만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이번에도 그런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대통령은 강도높게 제도개혁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한편에서는 정치권의 집단이기주의에 발목이 잡혀 국민회의부터 벌써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는 보도다. 국회상시개원 예결위상설화 국회의장 당적이탈에는 합의했으나 그밖의 핵심사안은 진전을 보지 못한 가운데 중앙당조직축소나 지구당폐지문제는 이미 물건너갔다는 것이다.
5년 전에도 정치개혁입법이 요란하게 시도된 적이 있다. 외부의 각계 인사들이 두루 참여한 특별기구가 난상토론 끝에 마련한 건의안에는 국회상시개원 예결위상설화 인사청문회도입도 들어 있었으나 국회 심의과정에서 모두 없던 일로 폐기되고 말았다. 개혁대상인 정치인들에게 개혁의 최종 결정권을 계속 맡긴다면 이번에도 크게 기대할 것이 못된다.
▼ 제도보다 의식이 중요 ▼
정치개혁은 제도만 잘 만들어 놓는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제도는 필요조건일뿐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지금까지 법이 없어 정경유착 부정부패 불법 타락선거가 판을 치고 난장판국회 식물국회가 된 것이 아니다. 현행 통합선거법이 94년 봄 국회를 통과했을 때만 해도 가히 혁명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환상의 법’이라고 극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대로 지켜지기만 한다면 우리는 지구상의 어느 나라 보다도 모범적인 민주선거를 치르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난번 7·21재보선에 이르기까지 달라진 것이 무언가. 아무리 훌륭한 법과 제도라도 지킬 의사가 없거나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제도 못지 않게 의식개혁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치인들의 비뚤어진 의식구조와 정치풍토부터 고쳐놓지 않는 한 이번에도 과거의 실패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50년만의 평화적 정권교체도 무색해진다. 지금의 집권자가 진실로 정치개혁을 이루고자 한다면 제도뿐만 아니라 차제에 정치인들의 의식구조까지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어야 한다. 또 바꿔놔야 한다.
▼ 반칙자 예외없이 퇴출 ▼
그렇다면 딴 방법이 없다. 반칙자는 그가 누구든 예외없이 도태시키는 것이다. 옛날식으로 정치를 했다가는 가차없는 퇴출로 패가망신(敗家亡身)한다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집안부터 엄해야 한다. 내자식 종아리부터 쳐야 한다. 내자식은 감싸안고 남의 자식 종아리만 자꾸 친다면 누가 승복하겠는가. 사정없는 사정(司正)의 칼날을 자기쪽에 먼저 들이댈 수 있어야 영(令)이 선다.
사정당국이 현재 내사중인 비리정치인은 여야 4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첫번째도 두번째도 세번째도 자기쪽 사람을 먼저 단죄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른 곳으로 화살을 돌린다면 누가 표적사정이라 하겠는가. 실패한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정치개혁이든 정계개편이든 의도가 순수해야 한다. 사심(私心)을 버려야 한다.
남중구(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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