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을 내준 뒤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계파간 갈등으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던 한나라당이 야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당 안팎에 불안요소가 산재해 있어 한나라당의 전도가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한나라당에 실세총재가 등장함으로써 여야간 극한대립에서 벗어나 대화정치를 복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긴 했다. 여권이 한나라당 새 총재와 영수회담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데 이어 이총재도 이날 즉각적인 영수회담 개최를 제의하는 등 유화적인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간 해빙보다는 대결구도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여권이 정계개편과 대대적인 정치권 사정(司正), 경제청문회 추진 등을 예고하면서 한나라당에 대한 압박공세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여권의 압박공세에 대응해 강경노선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이총재 개인 입장에서 보면 총재 당선은 대선 실패의 늪에서 벗어나 대권에 재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기회를 잡은 셈이다. 그러나 이총재가 대권 재도전을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대외적으로는 정부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으로 거듭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당면한 위기의 본질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지 못하는 데 있다. 이총재는 총재 수락연설에서 “정부 여당의 독선 독주를 철저히 견제하되 협력할 것은 과감히 협력하는 강한 야당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당내문제로는 정권재창출 실패에 따른 패배주의 극복과 당의 단합을 유도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총재경선에서 경쟁했던 이한동(李漢東) 김덕룡(金德龍)전부총재 서청원(徐淸源)전사무총장 등의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또다시 내분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또 신주류를 형성할 김윤환(金潤煥) 이기택(李基澤)전부총재와의 관계정립도 난제 중의 하나다. 두사람이 경선 공헌도를 내세워 지분보장을 요구할 경우 갈등이 불거질 개연성이 없지 않다.
여기에다 조만간 현실로 나타날 한나라당의 원내과반수 의석 붕괴도 이총재에게는 부담이다. 또 경선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했지만 총재경선후보 중 일부가 탈당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이총재 중심의 신주류가 당직과 당론결정을 독점할 경우 반(反)이회창 진영의 집단탈당 움직임이 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여소야대(與小野大)상황에서도 대여(對與)견제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따라서 야소(野小)로 상황이 바뀌면 정부 여당에 대한 견제에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향후 한나라당의 진로는 총재경선 낙선자들의 행보와 함께 이총재가 리더십을 발휘해 당 내부를 어떻게 추스르느냐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김차수기자〉kim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