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총재경선/표분석]이회창후보 영남표 독식

  • 입력 1998년 8월 31일 19시 26분


31일 한나라당 총재경선은 다소 싱겁게 1차투표로 끝났다.

4명의 후보가 출마했음에도 이회창(李會昌)후보가 1차투표에서 55.7%인 4천83표를 얻었다. 이후보가 지난해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1차투표에서 40.9%를 얻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이번 득표율은 그의 당내 지지기반이 더욱 확대됐음을 의미한다.

반면 경선기간중 ‘반(反)이회창 공동전선’을 펴온 이한동(李漢東) 김덕룡(金德龍) 서청원(徐淸源)후보는 ‘후보단일화’라는 최상의 무기를 확보하는데 실패, 득표율 합계가 과반에도 못미쳤다.

이는 ‘이회창―김윤환(金潤煥)―이기택(李基澤) 3자연대’를 바탕으로 한 ‘대세론’이 표심(票心)을 움직인 반면 ‘반이회창’진영에서 내세운 ‘대의원혁명론’은 상대적으로 호소력이 약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선에서 나타난 지역별 투표성향을 볼 때 이회창후보의 승인은 두가지.

우선 영남권후보가 한명도 없는 가운데 치러진 경선에서 이후보는 영남표를 독식하다시피 했다.

그는 대구 경북 대의원들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부산 경남대의원들로부터는 과반이 훨씬 넘는 표를 얻었다. 이와 함께 인천 경기 강원 등 상대적 열세지역에서도 50% 안팎의 지지율로 1위를 기록한 게 완승에 크게 기여했다.

반면 이한동후보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2위를 기록하는 등 비교적 선전했지만 결선투표에 올라 역전극을 노릴 기회는 잡지 못했다. 이후보 역시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에서 올린 14.66%의 득표율을 훨씬 상회하는 21.2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김덕룡후보는 호남에서 강세를 보였고 서울에서도 선전했지만 영남권에서 극히 부진, 목표였던 ‘2위 확보와 20% 득표’에 실패했다. ‘10% 득표’를 노렸던 서청원후보는 5%를 얻는데 그쳤다.

김, 서후보의 부진은 ‘1차투표 과반수저지와 결선투표에서의 역전극’이라는 ‘반이회창’진영의 꿈을 무산시켰다.

한편 전체 대의원 8천3백84명 중 7천8백여명이 전당대회에 참석했으나 투표한 사람은 대의원의 87%인 7천3백26명이었다.

〈문 철기자〉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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