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패배 후 8개월만에 총재로 재기해 1일 첫 출근한 이총재는 이에 대한 강도높은 비난으로 공식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주요당직자회의를 주재하며 “우리당이 새롭게 출범하는 마당에 여권에서 대선자금을 가지고 정치사정을 하겠다는 것은 대단히 정략적인 발상으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엄중하고 강력한 대응책 마련을 지시했다.
당내에서는 지난해 대선 전에 폭로했으나 검찰이 무혐의 처리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비자금문제 등을 다시 쟁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터져나오고 있다. 이날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여당은 제쳐둔 채 야당의 대선자금만 수사하려는 엄연한 야당 탄압”이라며 “생존차원에서라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져 결국 이날 국회본회의 거부로 이어졌다. 이총재는 총재 선출 직후 야당파괴기도에는 강경대응하되 민생문제 논의를 위한 여야 영수회담을 제의하는 등 화전(和戰)양면전략을 구사할 뜻을 밝혔으나 이같은 기조가 다소 변하는 분위기다. 검찰이 이총재의 핵심측근인 서상목(徐相穆)의원을 소환키로 한 것은 사실상 이총재를 직접 겨냥한 것이라는게 한나라당의 반응이다.
이총재는 다만 서의원 소환방침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해서 결정하자”고 말했다. 검찰소환 불응과 국회 거부 등 막무가내식 저항이 자신이 내건 ‘강력한 야당을 통한 새 정치’와 걸맞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듯하다.
여권의 입장은 한나라당과 전혀 다르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대선자금 문제는 검찰에서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면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여야 구분 없이 공평하게 수사하는 게 의무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도 불법자금을 조성했으면 해당된다”면서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표적수사는 하지 않는다는 게 일관된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도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국민회의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국세청을 동원한 정치자금 모금은 구여권의 금권정치, 타락 불법선거의 전형적인 수법”이라며 “성역없이 이번 의혹의 진실을 파헤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민련 변웅전(邊雄田)대변인도 “한나라당이 국세청장을 동원하고 재벌들을 옥죄어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거둬들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여권 내에서는 이번 수사가 확대될 경우 김대통령의 대선자금문제도 불거지고 정국경색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면수사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총무는 “이번 수사는 임채주(林采柱)전국세청장의 불법을 수사하는 것일 뿐 대선자금을 본격 수사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차수·양기대기자〉kim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