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한나라당내에서 건전야당을 지향하는 세력과 이회창(李會昌)총재 및 소수 측근세력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대변인은 “이총재가 두아들의 병역기피의혹과 국세청 대선자금모금사건에서처럼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에 대해서도 무책임하게 부인으로 일관한다면 건전한 정치파트너로 상대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는 여권의 이총재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즉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여권이 앞으로도 이총재를 정치적 카운터파트로 삼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이와 관련해 여권이 국세청사건과 총격요청사건 등 두 사건을 국기문란사건으로 규정한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여권의 공식입장은 갈수록 확고해지고 있으며 ‘반민족적 범죄’라는 수식어에도 변함이 없다.
여권내에서 이와 관련한 견해들이 공식 비공식으로 대두된 지는 오래다.
총격요청사건이 터지자 자민련은 변웅전(邊雄田)대변인의 공식논평을 통해 이총재에 대한 검찰수사와 함께 이총재의 ‘정계은퇴’를 공개거론했다.
국세청사건이 드러났을 때도 국민회의 정대변인은 “이 사건은 이총재가 정치적 파트너인지, 아니면 퇴출대상인지를 가려줄 가늠자”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이총재에 대한 여권내의 시각이 서서히 변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이는 물론 국세청사건과 총격요청사건에 이총재가 깊숙이 연루됐을 것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국민회의의 한 핵심당직자는 6일 “이총재를 국정파트너로 인정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재고(再考)’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한 김대통령 지근(至近)인사들의 태도는 신중하면서도 단호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앞일을 가정해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김대통령은 야당을 오래 해봤기 때문에 야당이 어떤 것이며 야당과 이총재를 지지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통합의 정치, 포용의 정치를 하겠다는 김대통령의 초지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구여권의 50년 적폐(積弊)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부정은 반드시 바로잡겠다는 김대통령의 신념 또한 확고하다”고 말했다. 이는 “이총재를 인정하고 싶지만 그가 이들 두 사건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시사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여권에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선에서 9백30만표를 얻은 이총재의 정치적 위상을 무시할 수도 없다. 지역대립이 더욱 고착화될 가능성도 걱정해야 한다.
이총재에 대한 김대통령과 여권의 태도는 이 두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가 윤곽이 잡힐 시점이 되면 어떤 방향으로든 굳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영묵기자〉m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