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철마를 달리게 하라

  • 입력 1998년 11월 3일 19시 09분


‘꿈의 금강산관광’이 이달 18일부터 시작된다. 간다 간다 하면서도 좀처럼 갈 수 없을 것 같던 금강산행이다. 그 꿈이 이뤄진다. 역시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조차 흥분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북으로부터 들고온 보따리에는 금강산 종합개발사업 말고도 굵직굵직한 사업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바로 어제까지 동해바다 밑으로 잠수정을 보내고 일본 하늘너머 로켓을 쏘아 올린 북한이다. 그들이 이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까지 앞에 나서서 경협을 빨리 하자고 재촉하고 있으니 그 ‘표변’이 놀랍다. 남북이 금방이라도 새로운 교류 협력시대로 접어들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키게 한다.

▼금강산행 꿈이 현실로

그러나 많은 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이구동성으로 ‘서두르지 말고 신중히, 들뜨지 말고 조용히’를 외친다. 어디 한두번 속아봤느냐고 냉소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조차 ‘남북관계는 하나씩 하나씩 성공시켜 쌓아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로 반가움을 감췄다. 그래도 버릴 수 없는 것이 꿈이다. 현대의 경협사업은 그런 점에서 조심스럽게 가꿔나가야 할 꿈이다.

특히 금강산관광과 개발사업은 군사시설이 밀집한 남북 접경지역을 북한이 과감하게 개방한다는 점에서 남북 화해의 하나의 시금석이 될 수가 있다. 비무장지대 바로 앞에까지 가서 먼발치로만 바라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금강산이다.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서린 연못이 손에 잡힐 듯 지척에 있어도 국토의 허리를 끊은 철조망 때문에 발을 내밀지 못했다. 바다는 물길이라도 이어지지만 땅은 절망적으로 끊긴 곳이 비무장지대 아니던가.

이제 금강산 개발사업이 시작된다니 비무장지대를 철도로 잇는 사업도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산에서 판문점을 지나 개성에 이르는 ‘녹슨 경의선(京義線)’을 잇고, 철원 월정리 갈대숲에 반세기동안 잠들어 누운 철마(鐵馬)를 일으켜 세워 금강산을 거쳐 원산까지 힘차게 달릴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녹슨 철도 다시 잇기를

지난 4월 일본 산케이신문은 북한이 경의선 경원선(京元線) 철도복구사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우리 철도청도 북한과 합의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복구작업에 착수해 2년 이내에 철도를 이을 수 있다고 희망을 부풀렸다. 복구노선이래야 경의선이 20㎞, 경원선이 31㎞, 복구경비도 두 노선 합쳐 5백억원이 채 못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가 금강산관광사업으로 북한에 주는 돈이 한달 평균 1백60억원인데 비하면 5백억원은 큰돈이 아니다.

남북을 잇는 철도는 또 있다. 동해안 고성에서 휴전선 바로 너머 금강산 온정리를 잇는 동해북부선이다. 일제시대에 노반까지 다 깔아놓고 철길만 놓지 않았던 곳이다. 북한측 노선은 남쪽 기업 ㈜태창이 온정리에서 원산에 이르는 1백8㎞를 작년 4월에 이었다. 6백만달러를 2년여동안 투입한 공사였다. 온정리에서 고성까지는 불과 24㎞. 이 철도만 잇는다면 금강산관광을 물길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금강산개발이나 경협사업으로 더욱 활발해질 남북간 물자 인력수송도 철도를 이용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사정만 허락하면 당일 금강산관광도 가능하다. 금강산 관광특구에 이산가족 상봉소라도 만든다면 고성∼온정리철도는 남북에 흩어져 그리움을 쌓아온 한맺힌 혈육들을 만나게 해주는 상봉의 가교가 된다. 언젠가는 시베리아철도나 만주철도로 이어져 유럽과 중국을 횡단하는 길로도 이용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철도를 잇는다는 것은 끊어진 국토의 허리를 잇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통일은 아직 멀다. 통일에 앞서 남북이 자꾸 만나 신뢰를 쌓아 올려야 한다. 철도는 이 남북의 만남을 재촉하고 단절된 마음을 이어주는 통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철마를 달리게 해야 한다. 이제는 꿈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가 됐다.

▼남북교류 信義가 첫째

현대는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금강산개발사업을 한다면서 혹 중소기업이 오랫동안 공들여온 사업에나 눈독을 들인다면 내외의 거센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현대가 정말 서둘러야 할 일이 북한내 공단조성사업이라는 정부의 뜻을 현대는 읽어야 한다. 북한당국 또한 남북교류에는 신의(信義)가 첫째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협력사업을 팔아 넘기는 식의 전략에는 한계가 있다. 경제협력은 민족의 화해를 앞당기는 사업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김종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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