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총무와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총무는 8일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회담 의제와 합의문초안작성 문제를 둘러싸고 비공개 마라톤협상을 벌였지만 이에 대한 완전 합의에는 끝내 이르지 못했다. 당초 양당 총무들은 이날 오전 한차례 회담만으로 합의문초안을 마련한 뒤 오후 2시경 합의사실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경제청문회와 정치인사정 문제 등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맞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회담을 계속했다.
양당 총무들은 경제청문회를 개최한다는 원칙에는 비교적 쉽게 합의했으나 시기를 합의문에 못박을 것이냐는 문제와 관련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맞섰다. 한총무는 경제청문회 개최 시기를 합의문에 못박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박총무는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자 양당 총무실 주변에서는 “양당 총장인 정균환(鄭均桓)―신경식(辛卿植)라인이 다해 놨다고 하더니 해놓은 게 없더라”는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결국 이날 오후까지 두 차례 협상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양당 총무들은 ‘수뇌부의 지침’을 받기 위해 대략적인 잠정합의문안을 가지고 헤어졌다. 그후 박총무는 이날 저녁 이회창(李會昌)총재의 가회동자택을 직접 찾아가 그간의 협상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이총재는 협상결과에 불만을 표시하며 박총무에게 강력한 주문을 했다. 이총재는 경제청문회에 대해서는 “총무에게 일임한 사항이니까…”라며 박총무에게 ‘책임과 의무’를 지우는 한편 정치인사정 문제를 반드시 의제에 넣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
이를 두고 한나라당 주변에선 이총재로서는 ‘회담 성사를 위해 너무 쉽게 굴복한 게 아니냐’는 비난을 우려해 여권으로부터 정치권 사정과 관련한 모종의 약속을 받아낼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총재는 특히 그같이 주문하면서 “안되면 (회담을) 하지 말지”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한때 ‘회담 자체가 물건너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감돌았다.
이총재 집에서 나온 박총무는 한때 ‘통신두절’ 상태에 있다가 밤늦게 다시 국민회의 한총무와 연락을 재개했다. 박총무는 이총재와 협의한 수정안을 팩시밀리로 한총무에게 보낸 뒤 “이것이 최종안”이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수정안에는 ‘이번 회기내 경제청문회 개최’조항을 없애는 대신 고문철저조사와 불법감청근절 등 두 조항이 추가됐다.
그러나 양당 총무들은 전화협상에서 정치인사정 문제는 비교적 수월하게 타협점을 찾았다. 즉 이를 합의문에는 못박지 않되 회담에서 여야 총재들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절히 하기로 하고 이를 협상대상에서 털어버린 것. 하지만 두사람은 경제청문회 문제에 대해서는 끝내 의견 접근을 보지 못하고 9일 아침을 기약했다.
〈문 철·공종식기자〉full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