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최광수/한반도 정세와 동북아 장래

  • 입력 1998년 11월 22일 19시 46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중국 방문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PEC)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던 20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일본 방문을 마치고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클린턴대통령의 방한은 지난 여름 워싱턴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있은 지 반년만의 일이다. 한일정상회담이 있은 것도 한달전의 일이며 한―러정상회담도 머지않아 실현될 전망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일본총리가 APEC정상회의 참석전에 러시아를 방문해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고, 중국의 장쩌민(江澤民)주석도 21일부터 러시아를, 그리고 25일부터 방일할 예정이다. 또 내달 중에는 베트남에서 동남아국가연합(ASEAN)10개국과 한중러 3국의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정상외교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일들이다.

▼ 포용정책 美中日 지지 ▼

오늘날 미국을 포함해 동북아 정상들의 행보가 이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동북아 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 과제와 냉전체제의 유산이 아직도 남아있는 유일한 지역이며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오랜 숙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관계와 질서를 모색해야할 절박한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동아시아와 러시아가 처한 심각한 경제난국도 정상들을 바쁘게 하는 또다른 요인이다.

지난 1년동안 우리와 주변 강국들의 관계에는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김대통령의 방일로 한일양국은 국교정상화이래 협력과 갈등이 교차하던 관계를 넘어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협력의 장전을 마련하였다. 한중관계도 과거보다 한차원 높은 우호협력관계 구축에 합의하였다. 그리고 미국과도 두번의 정상회담을 통해 전통적 우호관계와 공동방위체제를 재확인하고 경제난국 극복과 대북정책의 공조체제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의 전개는 21세기 동북아의 장래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변수의 하나가 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취임후 대북 3원칙을 천명했다. 북한의 어떠한 군사적 위협이나 무력도발도 용납하지 않되, 흡수통일을 기도하지 않고, 폭넓은 민간수준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고립에서 벗어나 개혁 개방의 길로 나아가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그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미중일의 이해와 지원을 획득하였다.

그간 북한이 정치구조와 지배체제를 변경하면서 발생한 미사일(인공위성)발사와 핵관련 지하시설의 의혹은 대북관계에 새로운 시금석으로 등장하였다. 한편 금강산관광이 본격화됨으로써 오래 막혀있던 남북 민간교류에 돌파구가 마련되어 남북관계는 강온이 교차하는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남북간의 긴장해소와 화해 그리고 교류협력을 위해서는 남북 기본합의의 틀을 유지하면서 94년 미―북한 제네바합의에 입각한 북한의 핵개발 능력 억제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사업의 계속 추진, 지난번에 절차와 원칙에 일부 합의를 보아 실질 토의의 실마리가 보이는 4차회담의 지속, 그리고 민간수준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궁극적으로 남북 당국간의 의미있는 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금번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을 통해 한미 양국 정부는 북한의 핵관련 의혹을 해소하고 KEDO와 4자회담의 현 대북정책의 테두리를 유지하는 일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이를 위한 한미 공조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핵’의 실체와 그 의도, 즉 대외협상의 지렛대인지, 현실화할 수 있는 가공할 위협인지를 판별함으로써 조속한 시일내에 반드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벼랑끝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외교적 정치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 대북 전방위외교 절실 ▼

이같은 노력에는 일본의 공동대응, 그리고 아직도 북한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의 이해와 협조가 불가결하며 러시아의 협조도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그러한 의미에서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와 지원을 계속 확보해나가는 이른바 ‘전방위 외교’가 그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동아시아는 지금 일찍이 없었던 난국에 처해있다. 한때 구가되던 ‘태평양시대’의 도래는 멀어지고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아시아적 가치’는 서구 언론으로부터 도전받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튼튼한 기술과 효율적인 생산기반 그리고 방대한 노동력과 시장을 균형있게 갖추고 있다. 동북아가 지난날의 유산을 청산하고 상호존중과 신뢰의 기반위에 평화와 안정을 지향하는 지역적 체제를 마련하여 경제난국을 극복한다면 21세기에는 또다시 태평양시대의 도래가 현실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광수(한일포럼회장·전 외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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