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李會昌)총재는 당초 계파 실세들을 부총재단에 포함시키려 했으나 김윤환(金潤煥)전부총재가 이날 오전 부총재단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이총재의 기본구상 자체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김전부총재는 이날 “총재 경선에서 이총재를 지원한 것은 단일지도체제로 강력한 야당을 만들어야 김대중(金大中)정부에 맞설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면서 “계파실세들이 부총재단에 참여할 경우 다시 계파정치가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총재단을 ‘실무형’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부총재를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총재는 최근 김윤환 이한동(李漢東) 김덕룡(金德龍) 이기택(李基澤)전부총재 등과 차례로 만나 부총재단 참여를 요청, 상당부분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으나 김전부총재의 불참 선언으로 부총재단 인선 자체를 다시 구상해야만 했다.
즉 이총재가 김전부총재의 부총재 수락을 전제로 다른 계파 실세들의 부총재단 참여를 설득했다는 점에서 다른 계파 실세들의 선택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
이기택전부총재의 한 측근은 “한사람이 그만둔다고 해서 다른 사람까지 그만두면 당의 모양이 우스워지는 것 아니냐”면서 이전부총재는 부총재를 수락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전부총재는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정신을 살려야 한다”는 점을 부총재 수락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해 이총재측과의 마찰 가능성은 잠재해 있는 상태다.
이한동전부총재는 24일에 이어 이날도 이총재와 단둘이 만나 부총재 참여를 거듭 요청받았으나 “향후 당운영구상을 분명히 밝혀야 부총재 수락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김덕룡전부총재 역시 최근 이총재로부터 부총재를 권유받고 “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구상을 먼저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부총재 수락여부에 대해 확답을 하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계파 실세들의 부총재단 참여문제가 진통을 겪으면서 다선원칙을 정했던 나머지 부총재 인선문제도 자연히 혼미상태에 빠졌다.
이같이 부총재단 인선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당내에서는 이총재의 지도력 부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벌써 터져나오고 있다. 이총재가 취임일성으로 ‘계파정치 타파’를 내세웠으나 정치력 부족으로 당내분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전국위가 끝난 뒤에도 한나라당은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특히 그동안 ‘주류 연대’로 불리던 이회창―김윤환―이기택 삼자간의 협력관계에 금이 가는 듯한 조짐은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실제로 김전부총재측은 이총재측에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지난해 대선에 이어 ‘8·31’전당대회에서도 적극 지원했는데 걸맞은 예우를 받지 못했다는 게 김전부총재측의 불만이다.
김전부총재의 측근들은 “이총재와 한 배를 타고 갈 수 없는 상황 아니냐”고 말하는 등 최악의 경우 이총재와의 ‘결별’까지 각오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김전부총재는 이날 아침 박헌기(朴憲基) 신영국(申榮國) 백승홍(白承弘)의원 등 대구 경북출신 의원들을 집으로 불러 부총재를 맡지 않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하루종일 집에서 칩거했다. 이총재가 전화를 걸어 부총재를 맡아달라고 간곡히 설득했으나 여전히 고사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또 김전부총재의 반발을 계기로 대구 경북출신 의원들의 ‘집단행동’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날 경북출신 의원 7명이 모인 자리에서는 ‘탈당해서 무소속을 하자’는 강경론까지 나왔다는 후문이다.
이총재는 이날 측근들과 비상대책회의를 갖는 등 하루종일 분주하게 움직였으나 밤늦게까지도 부총재단 인선내용을 확정하지 못했다.
〈김차수·문 철기자〉kim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