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면성격의 김정일 ▼
한국정치의 분석에서도 정치학보다는 동물학이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느낌을 때때로 갖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정의했는데, 그 명제를 우리 정치인들 가운데는 ‘정치적 인간은 동물’이라거나 ‘인간은 정치를 동물적으로 해야한다’고 오해한 탓인지 국회에서 육탄전을 벌이기도 하고 돈과 자리에 팔려 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국민적 관심의 초점으로 오르고 있는 북한을 연구함에 있어서 정치학의 효용성은 어느 정도일까. ‘잘 모르는 것 같다가도 알 것 같고, 알 것 같으면서도 영 모르겠는’ 북한 연구를 그래도 이제까지 이끌어 오는 데 일차적 역할을 수행해 온 정치학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새삼스레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되는 까닭은 북한과 관련해 중요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정치학자들은 일정한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북한 핵개발 의혹이 미국에 의해 강력히 제기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여기서 필자는 세계적 구조주의 철학자인 레비 스트로스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자신의 구조주의 이론은 세 개의 ‘지하학(地下學)’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표면의 정신세계가 아니라 표면 밑에 깔려 있는 잠재의 정신세계를 다루는 정신분석학 또는 심층(深層)심리학, 지표의 세계보다 지하의 세계를 주로 다루는 지질학, 그리고 상부구조보다 하부구조를 중시하는 마르크시즘 등이 그것들이다. 오늘날의 북한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접근법이 북한을 분석하는데 매우 효과적임을 실감하게 된다.
▼ 평북일대 핵의혹시설 ▼
우선 북한 연구의 시발점이자 귀착점인 김정일(金正日)에 관해서는 정신분석학 또는 심층심리학이 많은 도움을 준다. 정신분석학자들의 관찰로, 그는 ‘양면가치적(兩面價値的·앰비벌런트) 성격’의 소유자이다. 한편으로는 영화를 포함한 예술에 탁월한 감각을 지녀 ‘창조적’ 인간임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기와 테러리즘을 신봉하는 ‘파괴적’ 인간임을 보여준다.
지난날 세계사에 출몰했던 독재자들이 서로 모순되는 두개의 가치들을 동시에 포용한 ‘양면가치적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던 사실과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양면가치적 성격’의 독재자들은 최종적으로는 ‘호전성(好戰性)’으로 기울었다는 데 있다. 김정일 역시 ‘호전성’으로 기운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점에서 우리는 북한을 ‘지질학’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바로 평안북도 일대의 지하 여러 곳들에 자리잡은 핵관련 시설들이다. 지표 위에 드러난 고성능 무기들도 문제이지만 그것들보다 더 크게 위협적인 존재가 바로 지하의 핵관련 시설들이 아니겠는가.
북한은 이미 땅굴, 그리고 수면 아래로의 잠수함 침투 등 ‘밑’으로부터 우리를 공격하고자 시도해 왔음을 상기할 때 ‘지질학적’ 접근법의 효용성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 고개드는 지하경제 ▼
다른 한편으로 북한에서는 공식적 경제기구들이 사실상 무력해짐에 따라 ‘지하’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점점 성행하는 지하시장 또는 자유시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기본적 물질생활을 해결한다. 이 현상은 북한에서 시장경제의 싹이 자라고 있으며 북한이 내부적 힘을 통해 차차 변화하리라는 희망적인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이 희망적 기대감이 서방세계로 하여금,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게 만들어 왔음이 사실이다.
스트로스식 접근법을 종합하면 북한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하겠다. 내부적 변화 요인이 외부적 포용정책의 뒷받침에 자극되어 시간은 걸리더라도 개혁과 개방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아니면 그 길이 자멸을 재촉하리라는 예단에서 생존의 보험으로 핵무기 확보를 지향할 것인가. 정책당국으로서도 북한과 대북정책을 냉정하게 살펴야 할 때다.
김학준(인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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