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대통령은 왕이 아니기 때문에 김전대통령은 증언대에 서야 한다. 제왕시대의 군주는 곧 국가요 법이었고 그의 절대전횡의 지위는 치외법권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만인이 법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이는 시민민주주의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왕권시대의 군왕이 아닌 민주주의 시대의 한 시민으로서, 그리고 특별하게 과거 군사독재에 맞싸웠던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로서 민주적 절차를 밟는 청문회에 나서서 그는 진실을 증언하여야 한다. 덕장으로서 유신군부독재와의 싸움에서 타협을 거부하고 저항한 것은 정치가의 덕이나 오늘의 민주주의 절차를 거부하는 것은 부덕이다.
두번째 이유는 자신에 대한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위해서이다.김전대통령 자신이 매국자 이완용과 거의 버금가는 여론평가를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바라건대 여당의 방문조사나 서면조사, 증언면제 따위의 배려(?)를 사양하고 정면돌파의 소신대로 책임규명을 위해 증언대에 서서 금융환란의 진상을 국민앞에 밝힘으로써 시시비비를 가려 자신에 대한 보다 정당한 평가를 받아내야 할 것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이 민족사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지도자가 국민앞에 보여줄 양식과 용기다. 독재정권과 맞서 올곧게 싸웠던 민주주의자임을 증거하기 위해, 그리고 실추된 명예를 되찾는 실용주의자가 되기 위해 김영삼 전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청문회에 주저없이 나서야 한다.
황필홍<단국대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