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529호실 파문]‘강제진입-정치사찰’뜨거운 논쟁

  • 입력 1999년 1월 2일 20시 30분


검찰 현장감식
검찰 현장감식
새해벽두 돌출한 한나라당의원들의 국회529호실 강제진입 및 문서탈취사건이 갈길 바쁜 정치권을 또다시 급격히 냉각시키고 있다.

사건의 핵심쟁점은 두가지. 하나는 한나라당의 사무실진입행위가 내포하고 있는 불법성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한나라당이 제기하고 있는 정치사찰논란이다. 여야는 전혀 상반된 두가지 쟁점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과 입장을 표명하며 정초부터 뜨거운 공방전과 함께 일촉즉발의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7일로 끝나는 임시국회에서의 정상적 안건처리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정치일정의 순항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권이 8일부터 시작하기로 방침을 정했던 경제청문회와 10일쯤으로 생각했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연두교서발표계획도 불투명해졌다.

이런 가운데 여당은 임시국회현안의 강행처리와 의원체포동의안처리 등 강성기류로 흐르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으로서는 이번 사건의 배경에 ‘세풍’ ‘총풍’에 맞대응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사찰 공방〓한나라당은 529호에서 나온 문서들을 볼 때 안기부가 국회와 의원들을 상대로 정치사찰을 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2일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회활동에 관한 첩보보고와 의원 개인의 동향을 기록한 문건 등 일부를 공개했다.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안기부는 그동안 정치인 사찰자료를 축적해 ‘존안자료’를 만들어 정치인에 대한 통제수단으로 써왔다”면서 “이번에 발견된 문서에 정치인의 움직임을 일일이 추적하고 기록한 것이 포함된 만큼 명백한 정치사찰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이번 사건을 ‘안기부 정치사찰 사건’으로 규정키로 했다. 한나라당은 의원 개인에 관한 첩보보고 등 정치사찰 자료는 명예훼손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았으나 여권이 정치사찰이 아니라고 계속 고집할 경우 추가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여권은 이같은 정치사찰주장에 대해 “통상적인 정보수집활동”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안기부는 공식발표문을 통해 “문건내용은 여의도주변에 나돌고 있는 우리 부와 관련된 사실만을 작성한 것에 불과하며 우리직원의 수첩에 적힌 일부 정치인 관련사항도 정치사찰보고서가 아니라 관심사항만을 적어 놓은 개인메모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국민회의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한나라당이 공개한 문건에 대해 “문건을 분석한 결과 업무파악 및 업무참고용 메모수준에 불과하다”며 정치사찰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정치사찰은 정치공작을 목적으로 정치인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쳐 정부여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에 비춰볼 때 야당의 정치사찰주장은 객관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권은 통상정보활동이라 하더라도 국회의원 등의 동향이 적혀 있는 문건내용이 정치사찰주장의 구실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불법난입 공방〓여권은 이번 사건을 ‘국가기밀을 탈취한 국기문란행위’로 규정, 모든 형사적 정치적 책임을 추궁하기로 했다. 국회의 수사의뢰와 안기부의 직접 고발 등 연일 강경조치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국민회의는 1일의 간부회의와 2일의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이 기밀문서보호를 위한 특수보안시설을 부수고 기밀문서를 유린한 것은 기밀자체에 대한 유린을 넘어 그 기밀이 보호하고자 하는 국가이익을 유린한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여권은 특히 대법관출신인 이회창총재가 당시 사태를 진두지휘했다는 점을 중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권내에서는 이총재에 대한 성토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으며 이총재를 정치적 파트너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또 다시 제기되고 있는 상황.

여권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정치사찰보다 이같은 기밀탈취행위의 문제점이 훨씬 심각하다고 보고 강력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여당이 529호에 대한 합법적인 공개확인을 거부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물리력’을 동원해 열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여당이 공동확인 약속을 4차례나 어기면서 지연전술을 구사하는 상황에서 정치사찰의 증거를 확인, 사찰을 근절시키기 위해 문을 강제로 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총재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문을 열 경우 여권에서 불법시비를 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지만 불법 정치사찰을 확인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면서 “여권이 사건의 본질을 왜곡해 사무실 진입을 문제삼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트집”이라고 주장했다.

박희태(朴熺太)총무는 “국회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내부의 일을 사법기관에 의뢰한 것은 국회의 위상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비의회적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또 “현 여당이 야당시절 국회문을 부수고 의사진행을 방해한 일이 많았지만 한 차례도 수사의뢰나 사법처리된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내에서도 비주류를 중심으로 “정보위사무실을 강제로 부수고 들어간 일은 성급한 불법행위였다”며 이총재의 정치력과 지도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영묵·김차수기자〉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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