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529호실 파문]여야 양보없는 입씨름

  • 입력 1999년 1월 3일 19시 18분


국회 529호실 강제진입사건의 최대쟁점은 안기부의 정치사찰여부다. 그러나 여야는 각각 ‘통상활동’과 ‘정치사찰’이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아 아직 명쾌하게 그 판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정치사찰에 대한 공식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용어자체의 의미 또한 분명한 정의를 내릴 수 없을 정도로 포괄적이다.

사건 이후 한나라당은 안기부법 제2조의 ‘직무’조항을 판단근거로 제시했다. 즉 안기부에 허용된 국내정보 수집이 대공(對共)과 대정부전복 사안 등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국회활동과 국회의원 동향에 대한 정보수집을 통상활동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안기부는 본연의 업무대상인 대공정보와 일반정보를 일도양단식으로 구분하기 어렵고 대공정보수집을 위해서는 광범위한 1차정보수집이 불가피하다고 반박한다. 또 안기부업무를 다루는 정보위가 국회에 있는 이상 국회관련 정보수집은 ‘통상업무’라는 주장이다.

정치사찰이라는 용어는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의 동향을 파악하던 데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것을 과거 군사정권이 물려받아 정치인과 민주인사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탄압하는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과거의 기준에서 본다면 현재 첨예한 논란거리로 대두된 안기부의 활동은 “별 것 아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정치관여나 정치공작에 악용하려 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활동에 문제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529호실 문서에서 드러난 국회의원들에 대한 정보가 ‘유사시’ 악용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현정권과 안기부 수뇌부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어느 때 어느 선에서 이같은 약속이 변질될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국회연락관이 수집한 내용이 대공정보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따라서 안기부 직원들이 수집한 정보는 정치공작의 ‘원료(原料)’가 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이들의 활동을 정치사찰의 ‘예비단계’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안기부가 밝힌 기본 활동방향도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현정부출범 직후 안기부는 “국내정보에 치중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해외 경제 과학기술정보에 중점을 둬 정보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안기부의 정치인관련 정보수집활동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대두된다. 문서의 내용으로 볼 때 과거의 ‘관행’을 답습한 행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최영묵기자〉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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