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529호실 파문]여야, 난입-진입등 「용어싸움」

  • 입력 1999년 1월 3일 19시 18분


언어는 당파성(黨派性)을 갖는다. 대립과 갈등요소가 많은 사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5·16’이나 ‘5·17’에 대한 평가도 이런 범주에 속해 있다.

당사자들은 ‘혁명’, 반대파들은 ‘쿠데타’라고 주장하며 오랜 세월동안 치열한 다툼을 벌이다 결국 ‘쿠데타’로 굳어졌다.

지난해 12월31일 발생한 국회 정보위 529호실 사건을 놓고 여야의 ‘용어(用語)’주도권 싸움이 한창이다.

우선 한나라당이 529호실에 들어간 사실부터 여야의 용어가 다르다.

국민회의는 ‘난입’,한나라당은 ‘진입’이다.

국민회의는 불법성을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해 ‘난입’이란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불법 이미지를 최대한 희석시키기 위해 가치중립적인 ‘진입’이라는 용어를 고집한다.

529호실에서의 문서반출 행위에 대해서도 여당은 ‘탈취’,야당은 ‘확보’라는 용어를 쓴다.

529호실에서 발견된 문서도 여당은 개인적 의미가 강한 ‘메모’라고 표현하고 있는 반면 야당에서는 집단적 의미가 강한 ‘첩보’라고 규정한다.

국민회의는 1일 몇몇 일간지에서 529호실을 ‘안기부 분실’이라고 보도하자 “529호실의 정식명칭은 정보위 자료열람실”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긴급 배포했다.

529호실이 국민의 머리속에 자칫 ‘안기부 분실’로 고착될 경우 이번 사건의 흐름이 야당의 의도대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강한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자신들을 ‘불륜 현장을 덮친 수사관’으로 미화하는 것이나 국민회의가 ‘평온한 가정을 침입한 절도범’으로 한나라당을 비난하는 것도 언어 주도권 쟁탈전의 일환이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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