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의 한 인사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에 대한 ‘배제론’이 여권내부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한나라당의 정보위 강제진입에 ‘허(虛)’를 찔린 여권 인사들의 이총재에 대한 감정은 거의 극에 달해 있다. 사석에서는 “도저히 정치를 같이 하지 못할 사람”이라는 감정섞인 언사들이 쏟아진다. 3일 밤 열린 국민회의 비상대책회의에서도 이총재에 대한 비난이 줄을 이었다.
물론 몇몇 참석자가 “감정적 발언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제동을 걸긴 했지만 정서자체가 이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여권은 특히 이총재가 국회 529호실의 강제진입을 진두지휘했다는 대목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고개를 흔든다. 당차원의 대책위에 맡기면 그만인데 왜 총재가 앞장서서 불법행위를 주도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회의의 한 당직자는 “이총재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작정한 것인지, 정치를 모르는 총재를 주변사람들이 제대로 보좌하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총재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많은 여권인사가 혼란을 겪고 있다. “‘대쪽’인줄 알았는데 ‘세풍(稅風)’이나 정보위 난입사건을 보니 철저한 편의주의자”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민회의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4일 “이총재가 97년 7월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직후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을 만나 권영해(權寧海)안기부장의 교체를 요구했다”며 “김대통령은 이총재의 요구에 ‘안기부를 이용해 선거를 치르려는 거냐’고 거절했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총재는 이날 “둘이 만나 한 얘기를 공개하긴 어렵지만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총재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분석도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정치 지도자는 보통 정치사상가적 측면과 공학(工學)적 측면 두가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정치경력이 짧은 이총재는 대선을 치르면서 정치공학이 정치의 본질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총재를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느냐의 여부는 여권의 의지와 무관하다. 지난해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이 터졌을 때 국민회의 내부에서 ‘이총재 배제론’을 섣불리 거론했다가 ‘경솔한 언행’이라는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국민회의가 ‘배제론’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대다수 여권 인사들의 마음은 “이총재가 싫다”는 것이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