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한나라당이 정치사찰 및 도청 고문의혹을 제기했으나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다”(여권), “안기부의 ‘정치사찰’에 대한 강경대응과는 별도로 민생법안 처리에는 협조해야 한다”(한나라당)는 것이다.
▼ 여권 ▼
그동안 한나라당의 인권문제 등에 대한 공세에 “그럴 자격이 있느냐. 가치가 전도됐다”고 일축해왔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계속 의혹을 제기하며 정치쟁점화를 시도, 여론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여권 일각에서는 현정부가 과거 독재정권과 다르다는 점만 강조, 정치사찰 및 도청 고문 등과 관련해 오해를 살 만한 구정권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점을 너무 간과한 것이 아니냐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국민회의의 한 부총재는 “정보 수사기관의 경우 수뇌부만 교체됐을 뿐 실무선에서는 아직도 구시대의 사고와 관행이 상당히 남아 있을 수 있다”며 “현정부는 그런 일이 없다고만 할게 아니라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도적 법적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나라당 ▼
안기부의 정치사찰에 대한 대통령 사과 등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국회를 전면 보이콧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우세하지만 이번 사건과 원내대책을 분리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이러한 ‘분리대응론’에는 대여협상창구인 총무단과 중진의원뿐만 아니라 일부 초선의원들도 가세하고 있다.
박희태(朴熺太)총무는 5일 총재단회의에서 “오늘 본회의를 취소하되 내일 본회의를 열어 총리를 출석시킨 뒤 긴급현안 질문을 하는 원내투쟁을 벌이기 위해 여당과 협상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서청원(徐淸源)전사무총장도 신상우(辛相佑)국회부의장 이중재(李重載)의원 등과 만나 “시급한 민생법안을 통과시켜 주면서 대여투쟁을 벌이는 양면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펴고 있다.
또 맹형규(孟亨奎) 이원복(李源馥)의원 등은 의원총회에서 “오히려 우리가 먼저 민생법안은 밤을 세워서라도 처리해주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신중론의 이면에는 한나라당이 법안처리를 계속 거부해 여당 단독국회의 명분을 제공하게 될 경우 소속의원들의 체포동의안이 여당단독으로 처리되는 빌미를 줄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양기대·이원재기자〉k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