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재는 경기고 49회, 이부장은 52회로 이총재가 나이로는 한살 위지만 학교로는 3년 선배다. 이부장은 지난해 9월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모금사건이 터졌을 때 한나라당 이총재와 ‘핫 라인’을 구축해 원만한 타결을 모색했을 정도로 온건론자로 분류됐었다.
이부장은 사석에서도 “정치인인 내가 안기부장에 취임한 사실을 야당측은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이부장이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에서 불거진 안기부의 고문수사설에 이어 정치사찰 논란이 터져나오면서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부장은 “한나라당은 안기부에 대해 오도(誤道)된 사고를 가진 지도자 때문에 방향을 잘못 잡고 표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당이 목청만 앞세운 소수강경파에 끌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 이총재를 겨냥한 발언이다. 안기부 관계자는 “이총재가 자신의 정치적 위기극복을 위해 안기부를 희생양으로 삼는데 대한 분노의 표시”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총재는 이부장이 국회정보위에서 자신을 그렇게 맹비난했지만 6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그에 대해 일절 말을 꺼내지 않았다.기자들의 질문에도 “후배인데 뭐…”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총재가 이처럼 직접적인 대응을 삼가는 데 대해 이총재 측근들은 “몸소 대적하기에는 이부장의 ‘정치적 격’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이총재의 평소 스타일로 비춰 볼때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며 속으로 분을 삭이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대신 이총재는 당소속 정보위원 합동기자회견과 대변인성명 등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이부장의 인신모독적 발언을 간접 규탄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날 정보위원들과 안택수(安澤秀)대변인은 “아직도 자신을 정치인으로서 혼돈하고 있는 안기부장의 태도는 참으로 위험스럽고 몰상식한 것”이라고 성토했다. 신경식(辛卿植)사무총장은 “안기부장이 야당총재를 모독하는 정도를 넘어 짓밟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없었던 일”이라며 “안기부가 오히려 정국을 들쑤셔 놓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부장이 북풍사건 고문의혹에 이어 정치사찰문제까지 뒤집어 쓰게 될 경우 여권내 ‘포스트 DJ’를 지향하는 그의 정치플랜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때문에 배수진을 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원재·윤영찬기자〉w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