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국조계획서 기습처리/與 잇단 강공 배경]

  • 입력 1999년 1월 8일 07시 37분


여당이 왜 ‘무리수’를 두었을까.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7일에도 국회본회의에서 변칙처리를 강행하자 전날과는 완전히 다른 반응이 터져나왔다.

6일만 해도 처리안건 대부분이 경제회생이나 민생관련법안이어서 일부 절차상의 ‘하자’에도 불구하고 큰 비난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연 사흘 변칙처리를 강행하자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비난여론과 함께 “사흘씩 날치기를 계속한 것은 신기록”이라는 비아냥마저 나오고있다.

당초 국민회의는 7일에도 변칙처리를 하겠다는 방침은 아니었다. 시급한 현안이 마무리됐고 부담스러운 여당단독의 경제청문회를 끝까지 관철시키겠다는 의지가 굳은 것도 아니었다.

한나라당의 제지로 청문회가 무산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줌으로써 경제위기의 책임이 한나라당에 있음을 부각시키자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기류가 갑자기 돌변한 것은 미시적으로는 자민련의 강경한 자세에 그 원인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양당대책회의에서 조세형(趙世衡)총재권한대행 등 국민회의 당직자들은 내키지 않지만 여권공조를 위해 자민련의 청문회 강행요구를 수용했다.

자민련이 경제청문회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 때문. 김전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통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전대통령측의 ‘민주대연합’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게 일차 목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강경드라이브의 ‘관성’에 있다는 분석이다.

한번 ‘힘의 정치’의 효율성을 경험한 여당이 달콤한 유혹에 다시 빠져들었다는 것. 국정조사계획서의 강행처리 배경에 여당의 권위와 자존심을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7일 변칙처리의 ‘배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김대통령은 이날 주례당무보고를 한 조대행에게 “의원들끼리 충돌하는 사태는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국회문제는 당이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는 전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이 구상중인 대규모 정계개편 및 친정체제구축이 강경기류의 모태가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최영묵기자〉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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