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지도부는 국회에 체포동의안이 제출돼 있는 여야 의원 10명 가운데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불법모금 사건에 관여한 서의원에 대해서는 국사범인데다 이 사건 수사의 조기매듭을 위해서도 체포동의안 처리가 불가피하다고 거듭 공언해왔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반드시 처리한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이 이를 강행하지 않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체포동의안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표결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돼 한나라당이 극력 저지하는 상황에서 강행처리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86년 ‘국시(國是)파문’ 때 유성환(兪成煥)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도 당시 여당이 다수의 경찰을 동원해 간신히 처리했다.
여당의 의석수가 과반수에서 겨우 8석을 초과해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점도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동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인데다 무기명 비밀투표라는 형식을 감안할 때 이탈표에 의한 ‘뜻밖의 사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이 체포동의안 처리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처리할 경우 여야협상은 완전히 물건너갈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남겨놓아야만 앞으로 한나라당과의 협상에서 계속 지렛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여권이 처리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체포동의안을 상정함으로써 한나라당에 심리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었으나 이를 피한 것도 불필요하게 한나라당을 자극해 막판 협상의 여지를 봉쇄할 필요는 없다는 상황인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유보될 전망이다. 결국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의원들의 운명은 다시 검찰과 법원에 맡겨질 가능성이 크다.
〈양기대기자〉k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