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그는 “개헌정국으로 국론이 분열되어서는 안된다”며 “금년을 잘 넘겨야 한다”고 말해 당초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내각제개헌 시기에 대한 합의(99년말)를 사실상 무효화, 공동정권 내에 약속위반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발언이 15일 자민련 대전교례회에서 김용환(金龍煥)수석부총재가 “빠른 시일 내에 내각제 추진위를 발족시켜야 한다”고 공식 촉구한 직후에 나왔다는 점도 주목된다. 내각제 논의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고려가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내각제개헌 이행’과 ‘시기 조정’중 어디에 더 무게를 둬야 하느냐는 질문에 일단 “내각제개헌 이행”이라고 답변했으나 발언시점에 비춰 그가 정작 말하고 싶었던 것은 ‘시기 조정’이었을 것이다. 나아가 그가 시기조정론의 근거로 국민여론을 든 것은 내각제정국을 정면돌파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문제는 김대통령이 김종필(金鍾泌)총리를 두차례 독대한 뒤에 이같은 발언이 나와 내각제합의의 당사자인 두 사람 사이에 이미 이면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겠느냐는 추측까지 자아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태준(朴泰俊)자민련총재가 16일 일본 도쿄(東京)신문과의 회견에서 “김대통령과 김총리가 권한을 나누는 이원집정부제가 적당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며 타협안을 제시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김대통령과 김총리가 이미 개헌 이전과 이후의 국정운영 구도에 대한 문제까지 조율을 마쳤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작년말의 ‘내각제관련 발언자제’ 방침을 거스르고 시기조정론을 공식 언급한 것은 여권 내부기류에 모종의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자민련이 공공연히 반발하고 나선 점에 비춰 그의 발언은 단순히 자민련과 여론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기조정론은 △내각제개헌 약속 당시엔 외환위기를 예측하지 못했으나 그후 상황이 달라졌다는 상황변경론 △잘못하면 브라질처럼 외환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위기재발론 △따라서 구조조정을 완수할 때까지는 개헌논의로 국론이 분열돼서는 안된다는 경제우선론 등으로 이어져 있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내각제개헌 공론화시기를 언제쯤으로 잡고 있을까. 내년 4월 16대 총선 전 개헌은 어렵다는 게 청와대측의 일반적인 분위기다.
또 청와대의 내각제개헌 이행의지가 과연 확고한지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임채청기자〉cc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