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재가 그동안 내각제 개헌문제에 관해 관망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미묘한 시기에 이같은 입장을 밝히고 나선 이유는 최소한 세가지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첫째, 내각제 개헌시기를 둘러싼 국민회의 자민련간의 공방을 부추겨 두 여당의 틈새벌리기로 한나라당의 입지를 강화하고 둘째, 연내 개헌이 성사될 경우 국민의 뜻에 따른다는 구실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되 셋째, 임기말 개헌 등 여권의 개헌 변질 시도는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우선 공동여당 틈새벌리기는 한나라당이 내각제 개헌과 관련해 꾸준히 시도해온 목표 중 하나다.
이총재가 이날 이에 관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안택수(安澤秀)대변인 등이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안대변인은 “내각제 연내 개헌은 공동정권 성립의 핵심조건이었고 국민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지켜지는 게 당연하다”면서 자민련 편을 들었다.
또 이총재는 연내 내각제 개헌에 국민이 동의할 경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해가고 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이총재 입장에서 세풍 총풍사건 등 여권의 압박과 당내 비주류의 흔들기 등 안팎의 시련에 맞서 4년 후 대통령선거까지 살아남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내각제 개헌을 통해 집권을 시도하는 게 쉬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총재는 대신 연내 개헌이 이루어지더라도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총재는 또 연내 개헌이 무산되고 임기말 개헌이나 이원집정부제 채택 등이 추진되는 것을 최악의 경우로 상정하고 이를 극력 저지하겠다는 결의를 분명히 했다.
〈김차수기자〉kim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