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여야동수 특위 구성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이 20일 이틀째 단독청문회를 강행하자 공동청문회는 아예 물건너갔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물론 협상의 물꼬가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와 자민련 구천서(具天書)총무는 이날 오후 상견례를 겸해 비공식접촉을 갖고 대화의 숨통을 열어놓았다.
이총무는 구총무를 만나기 전 “앞으로 며칠간이 고비가 되지 않겠느냐”고 의미있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25일부터 증인 신문이 시작되는 점을 감안할 때 적어도 이 시점 이전에 협상을 가속화해 가부간 결말을 내보겠다는 게 이총무의 심산인 듯하다.
현실적으로도 청문회의 핵심인 증인신문에 들어간 이후 한나라당이 중도참여하는 것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협상의 여지는 남아있지만 한나라당 내의 전체적인 기류를 살펴볼 때 청문회 참여의지는 그리 강하지 않다.
특히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청문회에 대한 입장은 매우 단호하다. 한 측근은 “이총재가 여당의 단독청문회 강행 이후 지금의 풍토에서는 청문회에서 무슨 교훈을 얻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견해를 더욱 굳힌 것 같다”고 전했다.
이상득(李相得)정책위의장도 “이총재가 여야동수 구성에 매우 집착하는 것 같다”고 전하면서 “환란과 관계없는 개인휴대통신(PCS)인허가문제까지 다루자는 판에 청문회에 들어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한나라당으로서는 24일 경남 마산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기로 했고 이어 경북 구미와 인천 등지에서 장외집회를 구상하고 있는 등 당분간 장외투쟁에 전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문회에 참여해 당력을 분산시키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장외에서 세를 모으는 강공드라이브를 계속한 뒤 일정시점에 여야총재회담과 같은 형식을 통해 일거에 여러 현안을 풀자는 게 이총재의 복안으로 보인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