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대국론을 정권유지의 버팀목으로 삼고 있는 북한정권으로서는 현정권의 유화정책이 매우 기분 나쁘고 자신들의 정권을 기초부터 흔들려는 고등전술로 해석된다. 이는 새정부에 대해 전례없는 악담과 비방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데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혁명의 총대 위에 조국의 강성부흥이 있고 사회주의 승리가 있다”라는 평양방송의 보도처럼 군국주의 노선을 노골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김정일에게는 시비를 걸어오는 상대가 필요할 뿐 화해와 포용의 손길은 장애가 된다. 그래서 쌀을 보낼 때 동해안에 잠수정을, 소떼를 보낼때서 해안에 간첩선을 침투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햇볕정책에 상당한 한계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북정책에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북한 정권은 중국과 달리 개혁개방이 곧 권력자들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에 절대로 체제위기를 자초할 개방정책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식량 문제 해결책은 개혁개방뿐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못하는 까닭은 그것이 곧 자신들의 죽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이 엄청난 허구와 위선의 역사에 눈뜰 때 생겨날 대내적 갈등이 두렵고 흡수통일에 따른 대외적 신변위기감도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새로운 대북정책 제안을 생각할 수 있다. 죽을 바에야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총구를 남녘하늘에 겨냥한 북한 정권의 핵심세력에 대해 통일이 되더라도 적어도 그들의 생명만은 보장한다는 내용으로 통일헌법에 기초한 특별법을 제정해 극단적 행동을 막는 것이다. 이 제안에 일본 미국 중국 등 제삼국의 보장각서가 뒤따른다면 아마 신변안전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고 점진적 개혁과 개방의 자세를 취할 것이라고 본다. 이같은 획기적 계기 없이는 아무리 뜨거운 햇볕을 내리쬐어도 타서 죽을 망정 외투를 벗지 않을 것이다.
김동규(고려대교수·북한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