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상 두 여당의 내각제 게임은 사정변경론과 신의론의 충돌이지만 갈수록 권력투쟁 양상이 두드러진다. 국민회의도 자민련도 내세우는 명분과 논리는 나름대로 모두 일리가 있다. 여기에 신(新)3당합당론 이원집정제론 등 ‘소설’인지 시나리오인지가 시도 때도 없이 불거지면서 얽히고설켜 더욱 복잡해졌다. 참으로 풀기 난감한 방정식이다.
97년 11월 DJP합의문이 발표됐을 때 이미 이런 국면은 충분히 예견되고도 남았다. 대선을 눈앞에 둔 절박한 시점에서 이뤄진 정략적 합의였다고는 해도 조건과 가정(假定)이 너무 많은 정치계약이었다. 권력의 속성상 5년임기의 대통령을 절반만 하고 권좌를 물려준다는 정치적 약속이 과연 지켜질 수 있을 것인지, 그에 대한 회의론은 진작부터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당사자들도 우선 이렇게 하고, 뒷날 일은 또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는 속마음들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DJP합의문은 대선에 승리할 경우 내각제개헌에 관해 국민의 뜻을 물은 것으로 간주키로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두 당사자간의 정치적 약속일 뿐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 대선은 현행 헌법 아래 대통령을 뽑는 선거였지 헌법상의 권력구조를 선택하는 정치행사는 아니었다. 때문에 개헌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된 지금은 처음부터 다시 정식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길은 두 갈래다. 합의대로 연내에 개헌절차를 밟느냐 아니면 당초 합의에 수정을 가하느냐다. DJP합의는 기본적으로 연립여당 내부의 일인 만큼 일단 내부절충이 먼저다. 두 당사자가 ‘무릎을 맞대고’ 협의한 결과 연내 개헌추진이 좋겠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고 어렵겠다면 또 그것대로 계획을 바꾸면 된다. 어느 경우든 단일안을 만들고 그런 다음 국민의 뜻을 물어 선택받는 것이 순서다.
절충결과 개헌 착수 쪽으로 결론이 난다 해도 곧바로 개헌이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현재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원내의석은 통틀어 1백58석이다. 국회 개헌의결에 필요한 2백석에는 42석이 부족하다. 야당의 동조없이는 약속이행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도덕성시비 쯤이야 귀를 막고 정계개편을 한다 해도 42명 이상을 무더기로 빼내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의결과 국민투표를 거쳐 설령 개헌이 된다 해도 공동정권으로서는 또 하나의 산을 넘어야 한다. 내년 4월의 16대 총선에서 DJP진영이 원내 다수의석 확보에 실패한다면 만사휴의(萬事休矣)다. 대통령과 총리자리는 그때의 야당차지가 될 수도 있다. 합의내용을 바꿔 16대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할 경우라도 다음번 총선결과가 권력의 향방을 좌우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만천하에 공표한 약속을 깬다면 임기 내내 그에 따른 시비와 파문으로 시끄러울 것이다. DJ의 대통령당선에는 IMF관리체제를 몰아온 경제위기가 큰 몫을 했다. 그러나 ‘39만표 차이’가 말해주듯 DJP연합이 없었더라면 위험했을 수도 있다. 그만큼 DJ는 JP에 빚을 지고 있고 부담도 크다. 총리권한 강화나 연합공천 지분확대 정도의 보상으로 JP진영이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
언젠가 한번은 치러야 할 홍역이긴 하지만 그로 인한 정치적 갈등과 국력소모가 너무 크다. 어떤 형태로든 빨리 결말을 지어야 하겠으나 현재로서는 뾰족한 묘책이 없다는 데 이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다고 공방만 있고 해법은 없는 이 답답한 국면을 마냥 끌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당사자들의 애국심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양김(兩金)은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정치력을 발휘해 어떻게든 매듭을 풀어야 한다. 풀되 상식과 순리를 좇아 정도(正道)로 풀어야 한다. 당리당략이나 일신의 영달을 앞세워서는 안된다. 마음을 비우고 자신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결의가 앞서야 한다. 자기를 버리는 무욕(無慾)의 결단과 용기만 있다면 풀지 못할 방정식은 없다. 국민의 생각도 같을 것으로 믿는다.
남중구<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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