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국가보안법 철폐 등의 조건을 달아 회담을 제의한 것은 실제 성사를 염두에 둔 것이라기보다는 회담제안에 따르는 명분만 챙기고 회담불발의 책임은 우리측에 전가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더욱이 1백50명이나 되는 각계각층 인사들에게 서한을 보낸 것은 특유의 통일전선 전술에 따라 회담을 제의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제의에는 종전과는 다른 몇가지 긍정적인 측면이 있어 정부의 판단과 선택을 어렵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이라고 공식호칭한 것이 눈에 띈다. 북한은 6공화국 시절 비슷한 제의를 하며 ‘대한민국 대통령·민정당 총재 노태우(盧泰愚)’란 표현을 쓴 적이 있으나 이번처럼 한국대통령의 직함을 제대로 사용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또 회담이 열릴 경우 남북기본합의서이행과 교류협력방안, 이산가족문제 등 우리측 희망사항을 논의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자세를 취한 것도 유념해 볼 만한 대목.
이때문에 정부는 일단 북한의 제의를 일축하기보다는 정확한 진의를 좀 더 파악해볼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정부가 북한의 제의에 대한 실무회담을 수정제의하고 북측이 이를 수용할 경우에 전반적인 북―미관계 개선 조짐과 함께 올해 남북관계는 대화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도 있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