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보면 그대로 여권의 안이하고 경직된 현실인식을 자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야당을 합의의 장(場)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것도 결국 국정운영의 키를 쥐고 있는 여권에 보다 많은 책임이 있고 여야간의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여야 쌍방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집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수정권’ 운운하는 것은 당당하지 못하다. 또 진정 정계개편을 원한다면 야권의 변화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여권 스스로가 변화하는 모습과 정치제도 개혁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게 순서가 맞다.
경제청문회는 여당 단독의 ‘반쪽’이 되고 야당은 ‘철’에 맞지 않는 장외집회를 계속하는 등 정국파행의 주원인은 ‘원칙의 표류’에 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공동정권 내의 내각제논의가 그렇고 청문회출석과 불출석, 사면론과 불가론을 오락가락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증언문제나 그의 아들 현철(賢哲)씨 문제가 그렇다.
또 불과 얼마 전엔 당장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극적이었으나 야당의 장외집회가 본격화되면서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선 여야총재회담문제도 그렇다.
이런 현상은 근본적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 대한 여권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데 기인한다. 다소 복잡한 논리구조를 지니고 있어 상황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한 김대통령의 발언이 그때그때 변용돼 여권에 ‘무조건적인 준칙’으로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상 초유의 ‘검란(檢亂)’도 그 과정을 살펴보면 김대통령의 ‘원칙’표명이 실무선에서 융통성없이 증폭되면서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측면이 있다.
김대통령은 여론조사기관에 의한 수치화된 여론에 민감하고 각종 보고서를 정독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작 각계각층의 생생한 바닥 민심을 전해들을 기회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보고라인이 편중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임채청·양기대기자〉cc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