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깨끗한 정치를 외치지만 연일 ‘검은돈’ 시비가 끊이지않아 정치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
비자금 시비의 원조격은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95년10월 당시 민주당 박계동(朴啓東)의원의 폭로로 시작된 검찰 수사 결과 그는 무려 2천6백29억원을 추징당했다.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모금 수법은 철저한 ‘이권(利權)주고받기형’. 내로라 하는 재벌들을 불러들여 대규모 공사를 맡기거나 신규 사업 진출 허가 등을 내주는 대가로 수십억, 수백억원을 고스란히 주머니에 챙겼다.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은 다분히 ‘협박형’으로 분류된다. 국제그룹 공중분해로 기가 질린 재벌들은 특혜를 받기 보다 오로지 살아남기위해 줄을 서서 돈을 바쳤다. 그 결과 검찰이 전전대통령에게 추징한 돈은 2천2백5억원.
전전대통령은 국세청을 통한 대선자금 불법모금의 선례를 만들기도 했다. 이원조(李源祚)전의원과 안무혁(安武赫) 성용욱(成鎔旭)전국세청장은 30대 재벌 등 중견 기업 명단을 작성해 일일이 받을 돈을 매긴 뒤 수금하는 방법으로 87년 노전대통령 대선자금을 조성했다.
92년 대선에서는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선거비용이 문제가 됐다.
김전대통령은 한결같이 ‘법정 선거비용 준수’를 거듭 밝히고 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않다.
정태수(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은 이번 경제청문회에서 김전대통령에게 1백50억원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이 돈을 보수(보증수표)로 줘서 추적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여 발언의 신뢰도를 높였다.
97년 대선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측의 ‘세풍(稅風)’시비를 낳았다. 그 결과 이총재의 동생 회성(會晟)씨는 임채주(林采柱)전국세청장과 이석희(李碩熙)전국세청차장과 함께 25개 업체로부터 1백67억원을 불법모금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총재측은 물론 이를 부인하지만 진실 여부는 불투명하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역시 비자금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
시비를 제기한 사람은 한나라당 강삼재(姜三載)의원. 그는 97년 대선전 김대통령이 3백65개의 가차명계좌에 6백70억원의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작년초 검찰 수사에 의해 대부분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지만 여전히 의혹은 남는다.
당시 검찰은 수사 발표에서 김대통령의 처조카 이형택(李亨澤)씨 계좌의 47억원, 다른 친인척 계좌의 8억원을 김대통령 돈으로 확인해 김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사실 자체를 인정했다.
이밖에 김선홍(金善弘)전기아그룹회장 이신행(李信行)전의원 등 재벌 관련 인사의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권은 비자금 몸살을 앓는다.
이들의 비자금 행방이 관심사로 부상하는 한편 어김없이 ‘아무개 리스트’ 등이 나돌곤 한다. “한국 정치는 비자금 정치”라는 자조적 푸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