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전대통령은 11일 신임인사차 서울 상도동 자택을 찾으려 했던 김정길(金正吉)청와대정무수석을 단호하게 물리쳤다. 만날 이유도 없고 만나봤자 할 얘기도 없다는 게 김전대통령측의 설명.
한 측근은 “여권이 김수석의 방문을 현정부와 화해하는 신호탄인 것처럼 미리 홍보한데 대해 김전대통령은 매우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현정부에 대한 불만이 간단치 않다는 점을 ‘면담거부’로 표현한 셈이다.
김전대통령의 ‘입’역할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은 “김전대통령이 참모들의 만류로 기자회견을 연기하긴 했지만 워낙 의지가 확고해 김수석의 상도동 방문은 처음부터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그는 또 “김전대통령은 김수석의 기용이나 김기재(金杞載)전의원의 행정자치부장관 발탁을 여권의 화해제스처가 아닌 정계개편 추진을 통한 정면대결을 선포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9일의 기자회견이 연기된 뒤 김전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인사들이 전하는 말에서도 김전대통령의 격한 심사가 여전하다는 점은 쉽게 감지된다.
9일 상도동을 다녀온 한 인사는 “김전대통령이 마치 ‘야당의 호메이니’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며 “그동안 내방객들에게 격앙된 감정을 참지 않고 터뜨린 탓인지 목이 약간 쉬어 있었다”고 전했다.
여야간 총재회담 성사를 위한 물밑접촉이 진행되고 있는데 대해서도 김전대통령이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여권과 밀월관계에 들어가는 것은 사는 길이 아니라 죽는 길”이라고 잘라 말했다고 그는 소개했다.
또다른 인사는 “김전대통령이 설연휴 이후 기자회견을 강행해 현정부를 더욱 거세게 몰아붙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전대통령은 김수석의 방문을 거부한 이날 오후 자택으로 찾아온 김광일(金光一)전청와대비서실장과 함께 고 제정구(諸廷坵)의원 빈소에 조문을 다녀온 것 외에는 특별한 일정없이 하루를 보냈다.
한편 김수석은 11일 오후 최규하(崔圭夏)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자택을 차례로 예방해 건강과 날씨를 화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현정부의 국정운영에 전직대통령으로서 적극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