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무엇보다 북한의 식량난이 낙후된 농업구조의 개선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심각한 영양결핍에 따른 어린이 청소년들의 성장 장애로 통일 후에도 큰 후유증이 남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고위당국자는 “북한에서 한 세대 전체가 굶어죽어 가고 있는 것은 민족의 재앙”이라며 “민족의 장래를 생각할 때 더 이상 북한당국만 탓하고 있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인도주의적 입장과 함께 정부는 북한에 먼저 비료를 제공할 경우 북한이 비록 몇달 정도 시차를 두고서라도 남북관계 개선에 호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북한이 3일 상반기에 국가보안법 폐지 등이 이뤄질 경우 하반기에 고위급 정치회담을 열 수 있다고 제안한 것도 사실은 대화에 앞서 비료제공 등을 해 줄 것을 넌지시 촉구한 것이라는 게 정부의 해석이다.
과거 독일 통일 전 서독이 동독에 대한 장기간의 대규모 지원을 통해 교류활성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선례가 있기 때문에 이같은 방식은 남북간에도 효과적일 수 있다.
중국도 11일부터 2박3일간 중국을 방문한 임동원(林東源)청와대외교안보수석에게 한국이 먼저 대북지원을 하면 북한이 결국 남북관계개선에 응할 것이라고 선(先)대북지원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비료지원 방침을 세운 배경에는 이번에 어떻게 해서든 비료제공을 통한 남북대화가 열리지 않으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임기 내에 더 이상의 실질적인 관계개선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깔려 있다.
지난해 북한이 비료회담을 제의했다가 결렬된 뒤 다시 회담을 제의하기까지 1년이 걸린 점에 비춰볼 때 비료제공을 통해 남북접촉의 기본축을 유지하면서 이를 남북관계 개선으로 발전시켜야지 지난해처럼 엄격한 ‘상호주의’를 내세우다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때문에 국민에게 선비료지원이 상호주의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것이지 결코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설득시키는데 당분간 주력할 방침이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