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경제위기 극복노력을 평가하는데 인색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총수들의 극찬은 강압적 빅딜 추진 등에 불만을 넘어 분노까지 언뜻언뜻 드러낸 재계 일각의 현장분위기와 극히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이날의 언사들을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조선의 창업과 왕들의 공덕을 칭송한 노래) 같은 ‘경쟁적 아부’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재벌들에 대한 ‘선인수 후정산’ 등 시장논리를 벗어난 빅딜 강요에 대해서는 정부 안에서조차 부정적 인식이 없지않은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김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97년 12월19일 “모든 기업을 권력의 사슬로부터, 권력의 비호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권력악용은 있을 수 없다는 표명은 그후에도 여러번 반복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은 아직도 ‘권력에 밉보이면 무조건 손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대통령의 환심을 사서, 민영화되는 공기업 인수경쟁이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뭔가 남달리 ‘큰 떡’을 얻어먹겠다는 계산이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정부의 실적을 강조해 자기개혁을 흐지부지하려는 의도까지 있는 것일까.
하지만 만약 권력 앞에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뒷전에서는 정책운용의 발목을 잡거나 개혁 힘빼기를 꾀한다면 재벌에 대한 국내외의 부정적 인식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는 국가신뢰도 문제와도 직결된다. 지나친 찬사는 초(超)막강 권력을 쥐고 있는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게 그렇지 않아도 빠지기 쉬운 독선과 오만을 부채질할 우려도 있다. 재계 지도자들은 표리부동(表裏不同) 면종복배(面從腹背)의 두 얼굴을 갖지 말고 늘 약속해온 대로 진실로 자기개혁에 매진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정책과 그 운용에 대해 정면에서 할 말은 하고 협조할 것은 협조하는 모습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쪽은 면전의 극찬에 도취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거정권들도 재임중에는 재벌들로부터 ‘아첨 선물’을 많이 받았지만 퇴임 후엔 이들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사례가 적지 않다. 정권이 재벌과 투명하지 못한 관계를 맺거나 정도(正道)를 벗어나는 일을 저지르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과거정권들이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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