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승/정부조직개편 로비 막아야

  • 입력 1999년 3월 8일 19시 10분


따지고 보면 현재의 국난은 생존환경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적응위기(適應危機)에서 온 것이다. 지금 추진하는 정부조직 개편은 그러한 적응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민간 컨설팅사에 의한 대규모의 경영진단을 거쳐 정부의 조직과 기능에 대해 전면적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건국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정부의 조직개편은 그 방향이나 방법에서 크게 흠잡을 데는 없다고 본다. 다만 널리 여론을 들어 단일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본래의 개혁의지가 실종되는 일이 없도록 원칙을 확고히 지키면서 일정대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원칙지키며 일정대로

정부조직 개편의 방향은 무엇보다도 고임금 시대에 맞게 인력과 조직을 축소 조정하고 개방화시대에 맞게 공직사회에 개방경쟁의 질서를 도입하는 것이어야 한다. 국민의 생활선진화 욕구에 부응하여 정부기능을 규제자로부터 봉사자로 바꾸고 민주화시대에 맞게 공직자의 위상을 권위적 공직자로부터 시민적 공직자로 전환시키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

공무원의 임용 제도에서 민간 계약직 임용이나 특채제도의 활성화 등 개방경쟁체제를 과감하게 도입하겠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는 것이다. 나아가 정부 각 부처의 산하단체장에 대한 낙하산 인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산하단체에 인사권을 독립시켜 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복수직급제도의 폐지와 일자리 없는 잉여인력의 정리도 이번 기회에 단행해야 한다.

구 재정경제원과 같이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서 독주하는 막강한 기구는 필요치 않으나 현재보다는 조정기능을 다소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헌법상의 국민경제자문회의를 활성화 할 필요가 있다. 재정경제부장관이 경제정책 조정회의를 주재하도록 하는 것은 적절하다. 그럴 경우 현 기획예산위원회를 기획예산부로 개편하여 내각으로 넣는 것 보다는 예산청을 재경부에 두고 정부개혁 업무만을 대통령 직속으로 두든지 아니면 예산청을 기획예산위원회 안에 두고 계속 대통령 직속하에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금융부문에서 재경부와 한국은행간의 협의체제 구축은 당연하다. 다만 이대로 두면 한국 풍토에 비추어 한국은행의 실질적인 독립성이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행 예산권의 독립 등 보완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금융감독 규정의 제정과 감독세부사항 결정권은 금융감독원에 주고 재경부는 법령제정권만 갖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部處이기주의 극복을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의 업무중복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이들 세 부처의 통합을 전제로 부처간 업무를 재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럴 경우 상당한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해양수산부는 폐지하는 것이 순리다.

노동부와 보건복지부는 통합하여 복지노동부를 만들고 노동부와 복지부의 집행기능은 지방이나 공단에 과감하게 이양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노동업무는 노사쟁의 문제보다도 고용보험문제 실업대책 노동복지 등이 중심이 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청은 산업자원부의 실(室)로 개편하고 지방중소기업청은 지방자치단체나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 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사의 중립성과 전문성을 위해 대통령산하에 중앙인사위원회를 두되 인사관련 집행기능은 현행대로 행정자치부에 두어야 한다. 법무분야는 권위직에서 봉사직으로, 폐쇄에서 개방으로 대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개혁추진 기구를 두어 대수술을 추진해야 한다.

대외통상협상 업무는 대통령 직속의 통상대표부를 신설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지금 개혁에 가장 뒤져 있는 곳이 정치판이고 그 다음이 공공부문이다. 개혁에 따라 공직자들의 불안이 크겠지만 극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부처이기주의에서 나오는 조직적 저항을 돌파하여 개혁을 과감히 밀고 가야 한다.

다만 심각한 실업문제를 감안하여 공무원 감원만은 경기의 회복상태와 연계하여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박승(중앙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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