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이용적 기만술」▼
이야기는 1957년으로 돌아간다. 이해 8월 소련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대륙간탄도유도탄(ICBM) 발사에 성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9월에 두번째 발사에도 성공한 데 이어, 10월엔 세번째 ICBM이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지구주변 궤도에 진입시킴에도 성공하자 서방세계는 공포에 빠졌다. 뒷날 밝혀졌지만 소련의 ICBM은 매우 크고 조야해서 실전에 쓰기에는 알맞지 못했다. 그나마도 그 뒤 3년 동안 겨우 4기를 더 만드는 것으로 그쳤다. 그러나 노회한 흐루시초프는 “우리는 ICBM을 수없이 보유하고 있다. 내일 당장 10개 20개의 스푸트니크를 발사시킬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미국의 유명한 보수주의적 언론인 조셉 올솝은 “앞으로 3년 이내에 미국은 겨우 70기를 보유하게 될 것임에 비해 소련은 무려 1천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 서방세계를 더욱 겁먹게 만들었다. 신이 난 흐루시초프는 “우리는 언제든지 서방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고까지 극언하기에 이르렀다.
아이젠하워의 후임으로 선출된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 직후 중앙정보국(CIA)에 소련의 핵공격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지시했다. 1년넘게 걸려 올라온 보고서는 흐루시초프가 허장성세해 왔다고 결론지었다. 비록 첫단계에선 늦었지만 미국이 빠르게 만회하여 소련보다 확실히 우위에 서 있다는 평가였다. 이 보고가 있었기에 케네디는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소련에 단호하게 대처했던 것이고, 이로써 흐루시초프의 포템킨이즘은 파탄나고 말았다.
북한이 지난 93년 이후 오늘날까지 벌여온 핵협박 외교에 ‘환상주의적 기만법’이 포함된 것은 아닐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 현황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정확히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CIA의 의회에서의 거듭된 증언도 ‘아마도’ 폭탄 몇 개를 만들었을 것이며 설령 폭탄이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실전에는 덜 적절한 ‘크고 조야한 형태’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지난해 여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인공위성의 발사도 결국 궤도진입까지는 가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 개발이 상당히 많이 진전된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고 ‘핵 전쟁’이니 ‘불바다’니 하는 협박을 꺼리지 않았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북한의 핵무기 미사일 개발을 가볍게 보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북한의 핵공격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심지어 심각한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한쪽에서는 지나친 유화론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정반대의 초강경 선제공격론으로 북한을 다루려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다. 핵심적 질문은 북한의 핵공격 능력이 과연 어느 수준에 와 있느냐이다. 그것을 정확히 알고 나야 강(强)이든 온(穩)이든 적절한 대응책이 나오지 않겠는가.
북한이 문제의 지하핵시설들을 미국에 제대로 보여주기를 꺼리는 까닭은 진상이 밝혀지면 ‘환상주의적 기만술’이 더 이상 지탱되기 어려워지리라는 계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북한 사이의 일련의 협상을 보면 궁극적으로 북한의 지하핵시설에 대해 미국이 접근할 수있는 길이 열리는 것 같고, 이로써 북한의 포템킨이즘 핵외교도 끝날 것 같다.
▼核외교 매듭 이후는…▼
그 뒤는 어떻게 될까? 쿠바 미사일 사건을 계기로 흐루시초프의 포템킨이즘이 끝장난 뒤 비로소 미국과 소련은 빠르게 접근했다. 북―미관계도 지하핵시설 논쟁이 마감된 뒤에야, 그래서 북한이 더 이상 포템킨이즘을 써먹을 수 없게 돼야 비로소 개선쪽으로 가지 않을까?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대목이 있다. 미국은 쿠바 미사일 사건 당시 소련에 카스트로 정권의 존속을 묵시적으로 보장해 주고 터키에서 소련의 심장부를 겨냥하던 미국의 미사일 기지를 철수시켜 줌으로써 소련의 퇴로를 열어주었다. 미국이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인가? 최근 서울을 방문한 미국의 대북정책조정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북한 보고서를 제출할 이달 하순 이후를 주목하게 된다.
김학준〈본사논설고문·인천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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