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구리시에서 목욕탕을 운영하는 김연태씨(28) 가족은 지난해 11월초 충남 서산군 해미면사무소 직원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6·25전쟁 당시 포로로 끌려갔던 당신 외삼촌 서정헌(徐廷憲·30년생·사망)씨의 가족이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애타게 도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면 직원은 그날 오전 중국에서 해미면으로 배달된 서씨 부인 K씨의 편지 내용을 알려줬다.
90년대 초 서씨가 세상을 떠난 뒤 어렵게 생활하던 K씨는 지난해 10월 3자녀(1남2녀)를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 지린(吉林)성으로 건너가 마지막 수단으로 한국에 있을 남편의 혈육에게 호소하기로 하고 편지를 보냈던 것.김씨 가족은 외삼촌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미어졌지만 남은 가족을 살릴 길을 모색했다.
김씨 가족은 결단을 내렸다. 외숙모 일행의 나이와 성별에 맞춰 김씨 자신을 포함해 이모(서정헌씨의 여동생)와 이종사촌 채모씨 등 4명의 여권을 모았다.
12월말 지린성으로 건너간 이들은 외숙모 가족의 사진을 붙여 위조여권을 만들었고 1월 두번에 걸쳐 선양(瀋陽)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왔다.
김씨 가족은 외숙모 가족이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곧 바로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여권위조 사실을 털어놨다.
서울경찰청 외사과는 공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서울지법은 김씨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고 사건을 송치받은 서울지검 외사부도 영장재청구를 포기한 뒤 김씨만 불구속기소했고 나머지 3명에게는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정부도 김씨 가족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통일부 인도지원국은 “외교문제 때문에 탈북자 국내수용은 하루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닌 만큼 선처를 바란다”고 검찰에 탄원했다.
현재 K씨 가족은 한국에 정착하는 데 필요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