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측은 국민연금 확대실시와 정부조직개편, 김선길(金善吉)해양수산부 장관 등 문제각료의 경질문제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김종필(金鍾泌·JP)국무총리의 ‘몽니’에 발목이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목에까지 불만이 가득찬 분위기다.
핵심관계자들은 “각료조차 마음대로 경질하지 못하는 마당에 국정난맥상이 빚어지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어떤 형태로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볼멘 소리를 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이처럼 뒤뚱거리는 ‘2인3각’행보를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
문제는 현재 김대통령이 JP의 독주성 행태를 제어할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점. 그래서 국민회의 내에서는 상황타개를 위해 양당합당론이니 ‘DJP대타협론’이니 하는 방안이 대두되고 있으나 쉽게 가닥이 잡히지 않고 있다. 당분간 국민회의측은 ‘벙어리 냉가슴’을 좀더 앓아야 할 것 같다.
〈이동관기자〉dklee@donga.com
[갈등의 현주소]
국민연금 확대실시, 정부조직개편, 한일어업협정 뒷수습과정 등에서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의 독주 양상이 심화되고 있으나 청와대와 국민회의는 이를 제어할 마땅한 수단이 없어 고심 중이다.
청와대와 국민회의는 최근 불거진 일련의 정책혼선이 모두 김총리와의 불협화음에서 빚어졌다고 보고 있다. 국민연금과 한일어업협정 파문이 커진 것은 김총리가 자민련 출신인 해당 부처장관 두둔에 급급했기 때문이고 정부조직개편 역시 김총리 주재의 조율 과정에서 갈등이 과장돼 공연히 분란만 낳았다는 시각이다.4월1일부터 도시지역 자영업자에게 확대실시 예정인 국민연금의 경우 청와대와 국민회의는 11일 당무보고에서 이를 연기하기로 가닥을 잡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김총리는 12일 이와는 달리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총리의 입장이 워낙 강경하자 청와대와 국민회의도 12일 고위당정회의와 13일 국정협의회에서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기획예산위가 추진한 2차 정부조직개편안도 자민련의 반대와 이를 부추긴 김총리 때문에 졸속 위기에 처했다는 게 청와대와 국민회의측의 주장이다. 기획예산위의 시안이 나오자마자 자민련이 공무원 조직 동요 등을 이유로 반대여론을 주도했고 김총리마저 “부처 통합보다 기능조정에 국한해야 한다”며 가세, 초장에 개편 기류가 꺾였다는 것.
‘굴욕 외교’의 상징으로 평가되는 신 한일어업협정 후속협상 과정에서도 청와대와 국민회의는 초기에 김선길(金善吉)해양수산부장관을 경질, 파문 확산을 막았어야 했다는 입장. 그러나 김총리가 “수습중인 장관을 바꿀 수는 없다”며 ‘선(先)협상 후(後)경질’주장을 고집해 비난만 커지고 수습도 신통치 않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국민회의는 내각제 문제로 김총리와 자민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속으로만 앓고 있는 실정이다. 김총리가 특유의 ‘신의론’을 내세워 내각제 포문을 열고 자민련이 이를 뒷받침하면 원만한 국정운영이 불가능해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김총리의 ‘몽니’를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결국 김총리와 자민련을 국민회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이 역시 자민련이 반대,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DJ의 불만]
박지원(朴智元)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은 22일 오전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의 청와대 주례보고를 앞두고 매우 이례적인 내용의 브리핑을 했다.
김총리가 이날 오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만나 김선길(金善吉)해양수산부장관의 경질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박수석은 “해양수산부는 정치적 책임만 있는 게 아니라 행정적 책임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박수석은 이어 해양수산부를 전문성과 국제감각을 갖춘 팀으로 재편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새 장관이 임명되기도 전에 ‘해양수산부 대수술’을 예고한 박수석의 발언은 정 관가에 미묘한 파문을 일으켰다. 더구나 해양수산부장관은 공동정권 파트너인 김총리의 몫.
박수석이 이날 발언은 ‘작심(作心)’한 듯한 인상이 짙다. 비전문가인 김장관의 미숙한 협상태도 때문에 신 한일어업협정이 김대중정권의 대표적인 ‘굴욕외교’처럼 투영돼 국민여론이 악화된 데다 김총리 주변에서 또다시 비전문가인 자민련 정상천(鄭相千)의원이 후임장관으로 유력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데 대한 불만을 실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대통령과 국민회의 핵심부는 김총리의 ‘각료 인선행태’에 대해 매우 심각한 문제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 청와대 기류에 밝은 국민회의의 한 핵심당직자는 22일 “어업협정이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될 텐데 내무관료 출신인 정상천의원을 내세워 어쩌자는 것이냐”며 정의원 제청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청와대와 국민회의에서는 김총리가 최근 언론사 편집국장들을 초청한 자리에 국민연금 확대실시 문제로 파문을 일으켜 경질여론이 높은 김모임(金慕妊)보건복지부장관을 배석시켜 해명토록 한데 대해 “총리가 국정혼란보다는 자기 체면을 앞세워서야 되겠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사실 김총리의 ‘인선행태’에 대한 김대통령측의 불만토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첫 조각 때 기용된 주양자(朱良子)전보건복지부장관이 재산문제로 물의를 빚었을 때도 김총리가 이를 감싸는 바람에 결국은 국민여론만 악화된 뒤 경질하는 우를 범했다는 것.그러나 김대통령은 그 때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참아왔지만 이제는 뭔가 ‘조치’가 필요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게 김대통령과 주변인사들의 판단인 듯하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