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처음엔 3선개헌에 반대하다 “개헌은 결코 터부가 아니다”며 입장선회를 했던 그는 요즘 공동정권의 한 축인 국민회의를 상대로 내각제개헌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번 특집을 위해 16일 김총리에게 3선개헌 당시의 입장 등을 묻는 서면질의서를 보냈으나 그는 끝내 답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92년 동아일보사가 펴낸 ‘남산의 부장들’Ⅰ권 (저자 김충식·金忠植)은 그의 육성고백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도 그 점(3선개헌)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나 하나 안 굽혔다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그 어른(박정희)과 의견이 달라 한때 떨어져 나가 있었지만 그 분이 뜻을 굽히지 않으실 때는 내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유교적 집안에서 자라서인지,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더라도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고….’
신민당 정무위원으로 국민에게 개헌 반대를 통해 독재를 심판하자고 촉구했던 김대중(金大中)씨는 71년 대선에서 3선에 나선 박정희(朴正熙)씨에게 도전, 석패한 뒤 투옥 연금 망명 등 숱한 곡절을 겪고 끝내 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신민당 원내총무로 개헌반대를 진두지휘했던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은 최근 김대중정부의 실책을 공공연히 비판하는 등 퇴임 후에도 여전히 정치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 69년 7월 공화당 의원총회에서 당시 서슬이 퍼랬던 이후락(李厚洛)청와대비서실장 및 김형욱(金炯旭)중앙정보부장의 퇴진 등을 조건으로 개헌에 찬성했던 이만섭(李萬燮)씨는 국민회의 상임고문으로 있다. 이밖에 공화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야당의 극한투쟁은 민주주의를 좀먹는 것”이라고 비판했던 박준규(朴浚圭)씨는 현재 국회의장, 신민당 의원으로 개헌에 반대했던 김수한(金守漢)씨는 한나라당 상임고문이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