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총재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재 보선 결과에 따라 ‘이회창 흔들기’에 나서겠다는 비주류의 공격예고다. 이총재는 최근 비주류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재 보선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요당직자들을 재 보선지역에 상주시키는 한편 의원들에게 선거운동 지원을 읍소하는 편지도 보냈다. 재 보선 결과가 당지도부뿐만 아니라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미리 못박아 두겠다는 의도인 듯하다.
그러나 이총재가 느끼는 더 큰 압박감은 정국흐름에 끌려가고 있는게 아니냐는 당안팎의 지적이다. 여권에서 내각제 개헌 공방뿐만 아니라 국민회의 자민련 합당론, 젊은 피 수혈론 등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이슈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총재에게는 이를 유리한 국면조성의 기회로 활용할 지렛대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특히 공동여당이 합당할 경우 당내 수도권 의원들이 상당수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이총재를 괴롭히는 대목. 게다가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대거 초청해 ‘안방정치’를 한데 이어 그 대상을 종교인 학자 등으로 확대시켜 나가고 있는 것도 이총재에게는 부담이다.끊임없이 나돌고 있는 ‘5공(共) 신당설’이 현실로 나타날 경우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권에서의 이총재 지지기반이 상당부분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이총재측에서는 ‘새 정치’ 깃발을 통해 여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 당내 장악력 제고를 위한 대응방안을 개발 중이다. 이총재가 자주 ‘상생(相生)의 정치’를 역설하는 것도 이를 위한 사전포석.
이총재는 “정부 여당에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한나라당 지지도가 오르지 않는 것은 ‘야당이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총재는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대폭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알지만 당내 역학구도 때문에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한다.그동안 정치개혁을 주장하며 이총재를 직 간접으로 지원해온 초재선 모임인 ‘희망연대’마저 최근에는 무력감에 휩싸인 듯하다. 이총재는 지금 내년 총선을 통해 재집권 도전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의 본격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김차수기자〉kimcs@donga.com